추억 속 원료에서 기후 변화까지, 위기를 막기 위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에너지 절약
여러분은 페치카의 추억이 있는가? 그 당시는 강하게 빼치카라 불렀다. 2000년 전후로 우리 군(軍) 내무반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니 50대 이상은 대부분 경험했을 듯하다. 필자가 군 생활을 했던 내무반의 열에너지 공급원은 러시아식 벽난로인 페치카가 전부였다. 한 내무반에서 2개 소대 60명 내외의 인원이 단체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보일러가 있지만, 페치카가 생각보단 성능이 무척 뛰어났다. 야간근무 후 내무반에 들어와 곁에 가면, 절절 끓는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다. 꽤 큰 막사 하나를 오롯이 페치카 하나로 훈훈하게 하려면 얼마나 성능이 좋았겠는가. 페치카 원료가 궁금해진다.

동계 기간엔 막사마다 페치카를 관리하는 병사를 두게 된다. 이들을 빼당(빼치카 당번)이라 불렀다. 대부분 빼당은 중고참이 맡는다. 이들에겐 특수 임무와 동시에 특전이 부여된다. 빼당이 되면 각종 훈련 등 모든 일정에서 열외가 된다. 아침 점호를 위해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다. 오로지 겨우내 밤을 새우며 페치카만 꺼뜨리지 않고 관리하면, 나머지 시간은 잠을 자든 자유다. 덕분에 빼당에 눈독을 들이며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다. 페치카 원료는 검은색 석탄가루와 진흙을 물과 일정한 비율로 잘 섞어 찰지게 반죽하는 게 핵심 포인트다. 그래야 불이 한 번 붙으면 잘 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죽이 너무 걸쭉해도, 너무 묽어도 좋지 않다. 가장 적합한 황금 배합이 빼당의 실력을 좌우한다. 빼당의 실력이 좋으면 겨우내 속옷 바람만으로 내무반에서 생활할 정도였다.

지구 곳곳에서 이상기후나 기상이변으로 많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어느새 지구온난화는 우리나라를 아열대성 기후로 만들었고, 한국형 스콜이라는 집중호우는 많은 사람을 울리고 있다. 값싼 화석연료의 남용은 인류에게 풍요로운 현대문명을 선물했으나,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도 함께 가져다줬다. 계속되는 지구온난화로 빙산이 점점 녹아들어 해수면이 높아지고 북극곰들이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다. 온실가스 배출은 지구를 아프고 병들게 해서 기후위기로 이어지고, 결국 다시 사람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다. 이렇듯 기후위기는 에너지와 매우 밀접하다.
에너지 역사를 보면, 제1의 에너지는 불, 제2의 에너지는 석유, 제3의 에너지는 원자력, 그리고 제4의 에너지는 신재생에너지다. 여기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다. 과거의 군 내무반의 페치카 원료는 석탄이었으니 제2의 에너지인 셈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2009년 신년호에서 ‘제5의 에너지는 에너지 절약’이라고 했다. 지당한 말이다. 에너지 절약이 곧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가장 값싼 에너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석유가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도 10대 에너지 소비 국가이며 이산화탄소 다(多)배출 국가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비용도 전혀 들지 않고, 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으로도 이뤄지는 에너지 절약이 더욱 중요하다.

혁신은 방향 설정과 속도 조절이 핵심이다. 원전을 징검다리 에너지로 활용하자
정부는 작년 10월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0% 이상 감축한다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로 하겠다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그리고 12월에는 녹색에너지에서 원전을 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 초 유럽은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시켰다. 한마디로, ‘탄소중립’은 값싼 화석에너지를 값비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하고 깨끗하면서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는 비현실적인 환상이다. 탄소중립 대응의 요체는 일절 정치적인 고려는 배제하고, 오로지 과학과 팩트에만 근거해 추진해야 한다.
그러면 왜 비현실적 환상일까? 재생에너지는 태양과 바람과 같은 자연환경에 의존하므로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간헐성’이라는 태생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재생에너지는 비싸다. 발전단가가 높기에 정부 보조금 없이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향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경제성 개선 및 기술발전 속도 등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재생에너지를 늘리되, 그때까진 원전 비중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원전은 발전량과 비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재생에너지를 보완할 수 있다. 최소한 현재 시점에서 원전은 탄소중립을 위한 유력한 실용적 대안이다. 당연히 원전 없는 현실적 탄소중립 방안은 있을 수 없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이상(理想)은 높이 잡되, 현실은 알맞게 보라”고 말한다. 탄소중립 목표도 우리가 처한 현실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무리한 탄소중립 목표를 강행하면, 제조업 비중이 세계최고 수준이며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인 한국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지속해야 할 과제이기에 절대 조급해서는 안 된다. ‘원자력+재생에너지+화석에너지’라는 에너지믹스를 급격히 허물지 않으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여가는 ‘질서 있는 에너지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원전을 징검다리 에너지로 잘 활용하자.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위원
1986년 한국화학연구원에 입소한 이래 36년째 한 길을 걷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화학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울산대학교 화학공학부 겸임교수를 비롯해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4차산업혁명 U포럼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산, 울산, 여수 등 우리나라 3대 석유화학단지의 발전로드맵을 모두 총괄했으며 지난 2018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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