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 컬러 캔버스] 일어나라, 굳은 땅을 내딛고 우뚝 서서 머리를 들어라!

소를 사랑한 화가

여전히 쉽지 않을 2022년의 봄을 열며 이중섭의 그림을 펼친다. “단단한 발로 온갖 역경을 밀어내고 우뚝 일어서라!”라는 화백의 단호한 외침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화가를 꼽으라면 아마도 첫손가락에 꼽힐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필사적으로 ‘소’를 그렸다. 종이 살 돈이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도 그렸고, 붓 대신 못을 쥐고서도 그렸고, 피난 중 초가 단칸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삐쩍 말랐지만 눈빛만큼은 그림을 뚫고 나올 듯 강렬하다. 잿빛 땅을 떠받치며 한 걸음 내딛는 다리, 어깨를 쑥 내밀고 앞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처절한 몸짓…. 앞발을 들어 올렸다가 내디디려는 찰나, 소가 고개를 돌려 화폭 밖 관객을 쳐다본다. 거친 붓질과 발색(發色), 속도감이 느껴지는 <흰 소>(1954)는 이중섭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는 작품이다. 꼬리를 쳐들고 한쪽 다리를 치켜든 모습은 당장이라도 콧김을 거칠게 내뿜으며 달려들 기세다.
시인 고은은 <이중섭 평전>에서 ‘이중섭이 일생 동안 본 소는 우시장의 장꾼들이 본 소보다 많았을 것’이라고 썼다. 몇 날을 해가 저물도록 남의 집 소를 지켜보다 소도둑으로 몰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중섭은 우직하고 온순하지만 쉽게 굴하지 않는 뚝심, 역사적 위기마다 굳건히 이겨내고 전진하는 민족성을 ‘흰 소’에 담아냈다. 이중섭의 분신이자 우리 민족의 상징인 소 연작들에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통치와 남북 분단,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굴곡진 민족사가 투영돼있다. 저항적으로 느껴지는 강인한 붓질에서 희망과 애수가 동시에 가슴을 치는 이유다.

그리움을 그리다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에서 대지주의 3남으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였던 14세에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오산학교에 입학, 교사 임용련을 만나 예술에 눈을 뜬다. 습작의 중요성을 강조한 스승의 영향으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소를 자주 그렸다. 밭을 갈고 무거운 짐을 옮기며 예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동물. 이중섭은 소가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무덤덤하면서도 절규하는 듯한 표정, 큰 눈에 고인 눈물을 통해 소를 함부로 부리는 인간에 대한 저항을 표현했다. 미술을 더 깊이 공부하러 건너간 일본에서도 부단히 소를 그렸다. 이중섭이 일제강점기 몸담았던 도쿄 유학생 모임 백우회(白牛會)는 ‘흰 소’라는 뜻으로, 우리 민족을 상징했다.
잿빛이 감도는 황소의 누런색은 대지의 빛깔을, 흰 소는 백의민족을 대변한다. 이중섭은 소에 자신의 내면세계를 투영했다. 이는 동시대 모든 이들의 고난∙아픔을 대신하기도 했다. <길 떠나는 가족>(1954)은 소달구지에 가족들을 태워 보내는 이산의 아픔을 꾹꾹 눌러 그린 작품이다. 전쟁 중에 떠나보내야만 했던 가족들과 떠나와야 했던 삶의 터전…. 돌아갈 곳 없는 피난민의 외로움이 그림 속에 촘촘이 스며 있다.

저항의 붓질로 그린 민족의 기상

 

고개를 쳐들고 포효하듯 울부짖는 <황소>(1953)가 유독 생명력이 넘쳐 보이는 이유는 당시 이중섭이 ‘그림만 열심히 그려 팔면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차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무치는 외로움, 가족과 재회할 것이라는 희망이 거친 붓질에 범벅돼있다. <싸우는 소>(1955)에서는 분노와 슬픔으로 뒤엉킨 두 마리 소를 올려 극렬한 싸움을 붙였다. 전쟁통에 우리 민족이 겪어내야 했던 시련을 함축한 작품으로, 상흔으로 피 흘리는 소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유난히 슬픔에 젖은 눈망울이 인상적이다.

이중섭의 마지막 작품은 <덤벼드는 소>(1956)다. 온통 잿빛으로 뒤덮인 그림 속, 깡마르고 뻣뻣하고 처참한 행색의 소가 생명력을 잃은 공허한 눈빛으로 힘겹게 버티고 서 있다. 이중섭의 말년은 극한의 가난과 외로움, 고통으로 점철됐다. 심신이 병들어 4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아내에게 보낸 엽서 한 장은 끝내 유서가 되고 말았다. “정말 외롭구려.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며 안간힘을 다해 그림을 그리고 있소.”
6·25 전쟁 당시 이중섭은 제주도의 두 평 남짓한 초가 단칸에서 피난살이를 했는데, 이 초가는 지금 이중섭미술관 곁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있다. 단칸방 벽면에 걸린 <소의 말>이라는 자작시는 마치 절망 속에서도 끈질기게 희망을 붙잡았던 그의 주문 같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괴로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KCC가 제안하는 명화 속 컬러

코로나19라는 큰 변곡점을 지나와서일까. 한 템포 쉬면서 삶의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느리지만 확실하고, 투박하지만 단순한 일상에 어울리는 뉴트럴(neutral) 계열의 컬러도 주목받고 있다. 밀크티를 연상케 하는 포근한 느낌의 KCC YA0557, HA0333은 톤온톤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의 정석이다. 흙, 모래의 자연재질이 느껴지는 얼씨 톤(earthy tones)의 베이지·그레이 컬러가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을 연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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