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 컬러 캔버스] 신윤복의 붓끝에서 피어난 ‘色’다른 풍경

천재화백, 조선을 색으로 물들이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은 조선 후기 풍속화가로, 1758년에 태어나 화원화가인 부친 신한평의 뒤를 이어 도화서에 들어갔다. 장수한 부친이 75세까지 도화서로 출퇴근하니, 마주치지 않으려 피해 다니다가 양반 자제들의 풍류 속으로 스며들었다. 양반과 기녀, 평민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층의 옷차림을 세밀하게 묘사한 신윤복의 그림은 남녀의 욕망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양반가의 풍류와 위선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신윤복은 여성을 주로 그렸고, 주류에서 밀려나 몰래 엿본 것 같은 장면이 많으며, 섬세한 붓질 또한 여성적이라는 평이 많아 급기야는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설정한 드라마가 방송되기도 했다. 신윤복의 풍속화는 인물 묘사 방식과 구도, 배경 등 많은 면에서 이전의 그림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특히 색에 자꾸 눈이 간다. 신윤복은 강렬한 원색을 즐겨 사용했는데, 색의 농담을 조절하면서도 파랗거나 노랗고 빨간 색으로 주제를 돋보이게 했다. 그 중에서도 파란색을 활용하여 푸른 빛이 물든 작품들을 살펴보자.

<주유청강>의 중심을 이루는 색도 파랑이다. 여인들의 치마가 전부 파란색인데 농담을 조금씩 달리했고, 배 위에 설치한 천막에도, 강물과 바위에도 푸른빛이 감돈다. 짙푸른 바위 위에 제발(題跋, 그림과 함께 쓰인 시나 글)이 쓰여 있는데, 마치 그림 속 강가로 들어가 바위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긴 것처럼 자연스럽다.

一笛晩風聽不得 한 줄기 피리 소리는 저녁 바람에 들리지 않고
白鷗飛下浪花前 흰 갈매기가 꽃물결 앞으로 날아드는구나

신윤복의 화첩에서 여인들은 푸른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자주 등장한다. 눈썹달이 침침하게 뜬 밤중, 등불을 든 선비와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이 담벼락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다. ‘달빛 아래 정든 연인’이라는 뜻의 「월하정인」이다. 달밤에 밀회를 즐기는 남녀 옆에는 다음과 같은 제발이 적혀있다.

 

月下沈夜三更 달은 기울어 삼경인데
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의 마음이야 그들만이 알겠지

화폭에 새긴 남녀상열지사

조선시대에 물감은 구하기 어려운 귀한 재료였다. 오방색의 하나인 청색은 채색화는 물론 예로부터 건물의 단청 등에 널리 쓰인 색이었다. 청색을 만드는 재료는 구리 광물의 일종인 남동석(藍銅石)으로,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했다. 조선의 화백들은 남동석을 가루로 만든 석청(石淸)을 가공해 다양한 청색을 만들어 썼는데, 신윤복이 등장하는 소설 <바람의 화원>에도 물감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도화서 화원들이 색을 쓰지 못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색을 내는 안료를 구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쪽과 함께 푸른색을 내는 석청은 중국에서도 멀리 서역 너머에서 들여왔다. -중략- 구하기도 어렵지만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가격도 천정부지였다.”

어렵게 구한 재료로 알뜰살뜰 곱게 색을 입히는 화백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림이 새삼 달리 보일 듯하다.

<미인도>는 신윤복 그림의 백미로 꼽힌다. 화폭을 가득 채운 여인은 꿈꾸듯 밖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시대 여성의 초상화는 많지 않은데, 미인도 속 여인은 고운 얼굴에 화려한 가채, 가녀린 어깨, 풍성한 치마, 치마 밑으로 살포시 보이는 발까지 세밀하게 묘사됐다. 여인의 저고리도 숱한 뒷이야기를 낳았다. 노리개가 달린 옷고름이 풀어져 아래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고리를 벗고 있거나 입고 있는 순간이라는 의미다. 기실 해석이야 보는 사람 마음이다. 이 여인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누구였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그림 속 제발이 더욱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盤礴胸中萬化春 가슴속 깊은 곳에 서린 만 가지 춘정
筆端能與物傳神 붓끝으로 능히 그 마음 전하도다

가늘고 유연한 선과 또렷한 색채 사용, 현대적인 구도와 해학으로 조선 풍속화의 영역을 넓힌 혜원 신윤복. 당대에는 저급한 그림이라고 멸시받으며 역사의 기록에서도 철저히 외면당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후대에 들어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일명 《혜원전신첩》이라 불리는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은 국보 제135호로 지정돼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긴 세월 닫혀있던 화폭의 꽃봉오리가 열렸으니, 천재 화백이 펼쳐 놓은 담대한 색과 함께 조선 남녀의 춘정에 흠뻑 취해볼 만하다.

KCC가 제안하는 명화 속 컬러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새로운 에너지를 장전해줄 컬러를 찾았다면 파랑이 제격이다. 시린 겨울 한가운데에서 생동하는 무드를 연출하고 싶을 땐 KCC가 제안하는 파란색 컬러에 주목하자. 깨끗한 파스텔톤의 VF0034는 한겨울의 맑은 하늘과 닮아 있다. 하늘과 명도가 낮은 VM0149는 인위적이지 않으며 그윽한 멋을 내고, 좀 더 짙은 VI0065은 먼 바다에서 시작된 심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때론 철썩이는 깨우침으로, 때론 고요한 울림으로 새 기운을 전해주는 겨울바다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KCC 공식 홈페이지와 숲으로 인스타그램을 방문하면 더 다양한 파란색 컬러와 활용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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