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 컬러 캔버스] 붓으로 펼친 항변 ‘여자도 사람이외다’

보라색 양장을 한 신여성

나혜석(1896~1948년)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최초의 여류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다. 나혜석만큼 화제를 몰고 다닌 여성은 일찍이 조선에 없었다. 3·1운동 당시 시위 확산을 도모하다 5개월간 옥살이를 치렀고, 여성담론을 본격 제기하며 연애지상주의를 실천한 여성운동가이기도 했다. 야수파처럼 강렬한 색감, 표현주의적인 거침없는 붓질로 유명한 나혜석은 1921년 경성일보 내청각(來靑閣)에서 유화 전시회를 열었다. 서울에서 열린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전이었다. 이 전시는 5,000명 이상의 관객이 몰릴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듬해에는 조선미술대전에 입선, 전업화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며 색채에 신선한 효과를 주는 ‘인상파 분할묘법’도 선보였다.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말 것’을 결혼조건으로 요구한 이 당돌한 여자는 사는 내내 온갖 불합리한 억압들을 세상에 항변해나갔다. 1934년 잡지 <삼천리>에 ‘이혼고백서’를 게재해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이중성을 비판했는가 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돌아선 연인에게 공식적으로 1만 2,000원의 ‘정조 유린에 대한 위자료 청구소송’을 내는 등 당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대담한 응징에 나서기도 했다. ‘결혼이 인생의 정답은 아니다’와 같은 문제적 발언 이외에도 나혜석의 파격적인 자유연애론은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1934년 월간 <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나혜석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의 한 가지 희망은 인간으로 자유스럽고, 나의 마음껏 예술의 창작으로 정진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나혜석은 미술과 문학, 여성해방론에서 각기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당대 화단에서 볼 수 없던 독창적인 색감을 선보여온 ‘화가 나혜석’의 작품에는 농담을 달리한 보라색이 종종 눈에 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무희>는 1940년 후기작으로 추정되는데, 채도가 낮은 연보라색 음영의 모피코트가 화려하고 이국적이다.

 

<자화상>은 나혜석의 대표작으로, 보라색 양장을 차려입은 중년 여성의 얼굴 가득 그늘이 드리워있다. 우뚝한 코, 공허한 눈동자, 꾹 다문 입, 우울한 표정, 도드라진 광대뼈 아래로 흐르는 그림자에 고독과 좌절감이 가득하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어두운 배경은 또 얼마나 무거운지, 당시 나혜석이 짊어진 세상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한다. 어쩌면 이 자화상은 당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선각자로서 나혜석이 대신 짊어진 쓸쓸한 시대의 초상이었는지 모른다.

문제적 예술가, 신여성의 고뇌를 담다

한순간도 붓을 놓지 않고 거대한 세상에 대들었지만, 금기에 도전했던 나혜석은 그 자체로 금기가 됐다. 그림과 말과 글로 끊임없이 세상에 일갈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고, 나혜석은 점점 고립되고 시들어가다 1948년 행려병자로 눈을 감았다. 이 죽음은 당시 관보에 ‘신원 미상, 무연고자, 사망원인 영양실조, 추정연령 65~66세’라는 짧은 기사로 실렸으며, 어디에 묻혀 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생전에 300여 점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현재 나혜석 작품이라 주장되는 것은 약 50점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전문가 감정 결과 3분의 1만 진품이 확실시된 상황이며, 확실한 진작(眞作)은 <자화상>과 <화령전작약>(패널 유채, 33.7×24.5㎝) 등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자화상>은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 바로 옆은 수원 화성행궁이다. 길 건너 골목길을 걷다 보면 ‘정월 나혜석 생가터’ 표석이 나타나고, 이어 <남녀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맞섰던 예술가, 꽃보다 더 붉은 영혼을 지닌 예술가>라는 안내판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수원시민들은 골목길 담장 곳곳에 나혜석의 그림들을 그려놓았다. 나혜석이 나고 자란 이곳을 요즘 사람들은 ‘나혜석 옛길’이라 부르고 있다. 젊은 날 나혜석 또한 이 길을 오가며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 꿈은 이루어졌을까? 자화상 속 처연한 눈빛은 여전한 고뇌를 담은 채 우리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KCC가 제안하는 명화 속 컬러

보라색은 예로부터 하늘(파란색)과 태양(빨간색)을 섞은 색이라 하여, 임금만 쓸 수 있는 신성한 색상이었다고 한다. 고귀하고 화려하면서 신비로운 무드를 연출하고 싶을 땐 KCC가 제안하는 보라색 컬러에 주목하자. 진한 보라색인 JM0031는 보랏빛 야생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따뜻하고 파동이 긴 빨강과 차갑고 파동이 짧은 파랑이 드라마틱하게 어우러진 색이다. 연한 보라색인 PL0067는 좀 더 우아한 느낌을 안긴다. KCC 공식 홈페이지와 숲으로 인스타그램을 방문하면 더 다양한 보라색 컬러와 활용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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