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은 몰랐고 북한은 지워버린 거장

환하게 핀 꽃무더기가 항아리를 채우고도 넘친다. 인상주의 화풍의 생기 넘치는 꽃잎 수십 송이는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다. 드문드문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마치 고국을 향한 화가의 넘치는 애정 같다. 러시아에는 진달래가 피지 않는다. 처음 고국 땅을 밟은 게 1953년 7월이었으니, 모름지기 변월룡은 <진달래>를 그리던 1954년에 처음 진달래를 봤을 것이다.
연해주의 조선 소년 변월룡(1916~1990)은 쉬코토프스키의 유랑촌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호랑이 사냥꾼이었던 할아버지는 손자의 이름을 ‘병진년 용띠해 달밤에 태어났다’는 뜻의 월룡(月龍)으로 지었다. 다른 고려인들과 달리 그는 한국식 이름을 개명하지 않았고, 동료들은 ‘변월룡’을 ‘펜 봐를렌’(Пен Варлен)이라고 발음했다.
변월룡은 러시아 미술명문 상트페테르부르크 레핀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35년간 교수를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민족이라는 한계를 딛고 러시아 국립대 교수가 된 배경은 압도적인 실력이었다. 특히 동판화 기술은 그가 존경했던 거장 렘브란트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능숙한 모더니즘과 인상주의 기법으로 한국의 면면을 독특하게 담아낸 변월룡의 작품은 낯설면서도 어딘지 친근하다.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전언대로 인물화도 많이 남겼다. 소설 <닥터 지바고>의 저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비롯해 남북의 부자(父子) 새 박사로 유명한 원홍구 박사, 벽초 홍명희 등의 인물화는 한국 미술사를 다채롭게 물들인다.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든 최승희의 모습을 그린 1954년작 <무용가 최승희 초상>은 리얼리즘 화풍의 진수를 보여준다. 변월룡은 다른 화가들처럼 사진을 놓고 그리거나 모델을 꼼짝 못 하게 세워두고 그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 인물을 관찰하고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다가 그린 덕분에 살아 숨 쉬듯 꿈틀대는 표정이 붓끝에 머무른다.
비극적 근현대사 따라 떠돈 ‘카레이스키’



빨간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은 소녀의 순한 미소가 정겹다. 햇볕 따사로운 마당에 앉은 소녀의 모습을 묘사한 <양지의 소녀>는 변월룡이 북한에 머물며 처음 그린 작품이다. 변월룡은 1953년 소련과 북한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1년 3개월간의 짧은 교류였지만, 북한미술의 초석을 다지고 후진 양성에 기여했다. 인민대표대회에 배석해 김일성과 대의원의 모습을 소묘로 그렸는가 하면, 남북 포로 송환 현장의 긴장감 넘치는 장면도 유화로 남겼는데, 이는 어떤 문건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사료다.
변월룡은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북한 땅 곳곳을 다니며 그 시절 사람들과 산천초목을 그렸다. 인상주의적인 부드러운 색채와 경쾌한 붓질에서 고국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이 느껴지는데, 6·25 전쟁 직후 북한의 생활상을 다채롭게 담은 이 작품들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1953년 9월 판문점 휴전회담장>에서는 빛바랜 흑백사진으로나 볼 수 있었던 회담장의 실제 전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적막한 내부와 달리 창틈으로 새어든 햇빛이 너무도 밝아서 역사적 비극이 더 두드러진다.
사무쳤던 고국의 봄을 그리다


1985년작 <어머니>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늙은 어머니의 초상을 평온하게 담아냈다. 그림 밑 귀퉁이에는 단정한 한글로 ‘어머니’라고 적었는데, 어머니를 고국으로 읽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생애 말년에 그린 <가족>은 유년시절의 자신과 할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산허리 구름을 안고 서 있는 소나무가 꿋꿋하면서도 외로워 보이는 <금강송>은 유독 화가와 겹쳐 보인다. 아마도 생의 만년에 그의 시선은 다시는 갈 수 없는 고국의 산천으로 줄곧 달려갔었나 보다. 유언대로 무덤 비석에는 변월룡의 이름이 한글로 새겨졌다. 비록 육신은 타국에 묻혔지만, 영혼을 쏟아부은 작품들은 마침내 고국의 품에 안겼다.
비극적인 역사 속에도 예술은 빛난다. 소련에선 고려인으로 살아야 했고, 북한에선 귀화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방당했으며, 남한에선 최근까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변계(邊界)의 화가 변월룡. 한국 미술사에서 흔적조차 없는 이름이었던 변월룡이 최근 몇 차례의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그의 존재가 국내에 처음 알려진 건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백년의 신화: 한국근대미술 거장 변월룡>展에서다. 평론가들은 “아카데미즘과 리얼리즘을 망라한 변월룡의 작품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비어 있는 공간인 해방 후~6·25 전쟁 전후를 메워줄 중대한 연결고리”라고 설명한다. 철저히 잊힌 이름이었던, 그러나 더 이상 잊혀서는 안 될 우리 미술사의 숨은 보물, 변월룡. 코로나19로 무너진 일상을 회복해 나아가는 요즘. 국가와 이념, 통제와 자유 등 모든 경계와 혼란에도 묵묵히 중심을 지켰던 화가의 삶이 겸허한 위안을 준다.
KCC가 제안하는 명화 속 컬러
변월룡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머스터드-노란색은 KCC 페인트 중 목재용으로 가장 사랑받는 컬러다. 온 천지가 환하게 움트는 봄날의 색을 ‘숲으로셀프-목재용 머스터드’로 재현해보자. 예로부터 노란색, 즉 황(黃)색은 태양과 빛을 상징하는 고귀한 색으로 여겨졌다. 중세 종교화에서는 초현실적인 영의 세계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됐고, 중국에서는 오행사상에 따라 땅의 중앙을 지배하는 천자를 상징하는 색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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