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네이터’ 속 로봇은 타임머신을 통과하고 인간세계에 섞이기 위해 금속 골격 위에 생체조직을 뒤집어썼다. 영화 속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로봇을 더욱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자가치유까지 가능한 인조피부 속에는 한층 진화한 소재, 실리콘이 활약하고 있다.
탈모 고민 끝? 털 나고 사람처럼 느끼는 인공피부
사람의 피부는 20종 이상의 세포가 여러 층으로 배열된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 과학계는 1970년대부터 피부 조직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연구를 시도해왔다.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로봇 피부는 실리콘 고무나 폴리우레탄 같은 고분자 물질로 만드는데, 색깔은 물론 촉감도 사람의 피부와 비슷하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실리콘과 탄소 소재로 만든 센서를 피부 안에 넣어 힘과 온도까지 느끼게 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2018년 몸무게가 0.05g에 불과한 무당벌레를 인식하는 인공피부를 개발했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빛에 노출되면 색이 달라지는 인공피부를 만들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2020년 머리털이 나고 피지까지 나오는 인공피부 개발에 성공했는데, 촉각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회로까지 들어 있어 전 세계 탈모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신약·화장품 개발 시 동물실험을 대체할 인공피부도 국내에서 개발됐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2017년 1cm 실리콘 위에 인체 세포를 키운 피부 모델 마이크로칩을 만들었다. 사람의 피부를 똑같이 재현하려는 기술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팀은 2020년 얇은 실리콘과 다공성 라텍스를 층을 쌓아 올려 피부층, 피하지방층, 근육층으로 이뤄진 3중 피부 구조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인공피부는 의수나 산업용 집게, 산업용 로봇 손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사람처럼 느끼고 자체 치유가 가능한 로봇 피부도 개발했다. 지난 6월 KAIST 연구팀이 발표한 로봇 피부는 실리콘과 하이드로젤 등 부드러운 소재로 만들어져, 충격 흡수는 물론 날카로운 물체에 의해 깊게 찢기거나 베여도 피부의 구조와 기능을 손쉽게 회복한다. 이 기술은 의수·의족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간형 로봇’ 등장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 소재가 열어갈 ‘더 건강한’ 미래
알아서 자연분해되는 심장박동기도 나왔다. 202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연구팀은 심장에 삽입해 일정 기간 작동하면 몸에 흡수되는 심장박동기를 개발했다. 실리콘·마그네슘·텅스텐 등으로 이루어진 이 심장박동기는 얇고 유연하며 무게는 불과 0.5g 정도로, 화학반응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서 녹아 자연스럽게 몸에 흡수된다. 심장이 잘 뛰게 돕는 박동기를 넘어 아예 심장을 대체할 인공심장도 개발됐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는 2017년 실리콘 소재로 사람의 심장처럼 온몸으로 혈액을 보낼 수 있는 인공심장을 만들었다.
생명공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이 융합하면서 인간의 생체 기관을 대신하는 이식형 인공장기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체내에 이식할 수 있는 인공콩팥은 의공학계의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극도로 효율적인 사구체의 미세구조를 재현하기가 쉽지 않고, 투석기 형태의 인공콩팥은 크기가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어 인체 삽입이 불가능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콩팥은 헤모 필터를 실리콘 반도체막으로 만들어 크기를 확 줄였다. 미세한 구멍이 있는 실리콘막은 반도체 제조공법으로 쉽게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안전하게 혈액에서 세포 성분을 제외하고 액체를 제거할 수도 있다. 이 기술이 더 발전하면 평생 면역억제제 복용이 필요 없고, 면역거부반응 걱정도 없으며, 이식 가능한 신장이 부족해 고통받을 필요도 없는 인공장기 시대를 열지도 모른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인체 삽입형 의료기기들은 앞으로 더욱 다양해지고 수요가 증가할 전망이다. 의료용 생체 소재 개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의료용 생체 소재는 대체된 인체 부위와 최대한 유사하게 적절한 물성을 유지해야 하고 부식 문제 등을 극복해야 한다. ICT, BT 등 다양한 기술이 융복합 된 의료산업의 발전으로 모두가 건강하게 사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한다.


댓글 1개
와 인공피부에 탈모에도 쓰일 수 있다니, 흥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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