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쪽 상담소] 뭘 해도 무기력~ ‘노잼 시기’를 이겨내는 방법

나의 하루에는 내가 없습니다. 아이의 등교 시간과 회사의 출근시간에 맞춰 시작되는 나의 하루, 쌓여있는 메일과 해야 될 일로 가득 차 있는 리스트를 정신없이 처리하다 보면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되고, 조금이라도 머리를 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급하게 한 끼를 떼웁니다. 오후가 되면 마음은 더더욱 급해집니다. 귀중한 퇴근 이후 시간을 일 생각으로 망치지 않으려면 오늘까지 해야 할 일을 끝내야 하거든요. 내가 아니라 타인의 스케줄에 맞추는 하루, 사람들의 요구에 반응하느라 어느새 잃어버린 나의 감정. 직급과 엄마 아빠라는 호칭에 가려져 어느새 불려지지 않게 된 내 이름. 그래서 나의 하루에는 내가 없습니다.

 

‘쳇바퀴’같은 직장러의 삶

나의 하루에는 나만 있습니다. 삶이 자극으로 가득찼던 시기도 있었지요. 일이 없는데도 일부러 새벽에 일어나 아무도 없는 거리를 괜히 거닐며 아직 아무도 맡아보지 않은 새 것 같은 아침 공기에 감격하며 살아있음을 만끽하던 그런 순간들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 나는 가끔 내가 미국 드라마에서 봤던 좀비 같을 때가 있어요. 멍한 눈으로 비틀거리며 정처없이 어딘가를 향해서 가고 있는 세상을 ‘볼 수 있되, 느낄 수는 없는’ 그런 존재들이요. 그래요. 흥미 없는 일을 계속하기 싫다는 마음과 그래도 사회에서 내 몫을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십여 년간 싸운 끝에 초토화되버린 폐허 속에서 세상의 모든 즐겁고 신선한 자극을 차단한 채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그래서 나의 하루에는 나만 있습니다.

빌딩 숲 한가운데에서 병원을 하고 있다 보면 수 많은 직장인들을 환자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분들 중 상당수를 저는 ‘주요 우울증’ 혹은 ‘달리 분류되지 않은 우울장애’로 진단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분들이 호소하는 것은 슬픈 감정, 절망스러운 기분이 아닙니다. 이들이 호소하는 증상의 대부분은 ‘무기력’, 또는 ‘의욕이 없는 멍한 기분’입니다. 저는 이들을 안쓰러워하며 마음 한 구석의 차트에 ‘우울할 기력조차 없는 사람들’이라고 적어둡니다.

권태와 무기력은 어디서 올까?

보통 우리가 편안한 상태를 상상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누워있는 상태, 컴퓨터로 비유하면 전원이 꺼진 어두운 화면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느낌과는 달리 인간의 뇌는 자극이 없는 멍한 순간에도 돌아갑니다. 주로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면서요. 자극이 없을 때 의식을 스스로에게로 돌리는 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이하 DMN)’라고 불리는 회로를 통해 우리는 우울과 무기력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연구에서 우울증 또는 심한 무기력감을 보이는 환자들에게서 이 DMN의 과잉활성이나 연결 이상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DMN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의식의 초점을 나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우울증 상태를 분노가 자신에게 향해지는 현상이라고 정의한 것처럼, 지쳐버린 환자들의 뇌는 외부의 자극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의식을 스스로에게 돌려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우울증 환자들이 흔히 호소하는, 일도 더 이상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쉬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입니다.

‘뭔가 잘못 됐다’ 자각이 힘든 이유

이렇게 무기력하고 멍한 사람들의 정신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정신은 고요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머리 속은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분주합니다. 주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요. 내일 해야 될 일을 생각하며 행동으로 옮기기보다는 일을 제 시간에 마치지 못하였을 때 다가올 ‘나’의 위기를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보다는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집중을 합니다. 그리고 점차 따뜻해지는 봄이 오는 바람을 느끼기보다는 이렇게 좋은 날 회사에 갇혀 일을 하고 있는 ‘나’의 신세를 한탄하게 됩니다. 그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고 우리의 의식은 다시 내 자신 속으로 숨어버리게 됩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온전히 내가 내 시간을 보낼 때의 평화로움과는 다른 지쳐버린 상태이지요.

SOLUTION 1 이렇게 ‘환기’해 볼까요?

자 이제 밖으로 나올 때입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휴가를 신청할 기운도 없는 사람에게 눈치도 없이 “운동해라”, “여행가라“, ”며칠 휴가내라.“와 같은 말은 꺼내지도 않을 테니 안심하고 따라하세요. 그저 오늘 점심시간에 식사하고 들어올 때 10분만 내서 늘 지나가던 가로수를 쳐다 보세요.

단,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나의 모든 의식을 눈에 집중해서 가로수가 가지가 몇 개인지 이파리가 둥글었는지 아니면 사람의 손모양인지, 색은 옛날에 내가 가지고 있던 36색 크레파스 중에서 어떤 색깔인지 유심히 보세요. 비가 오는 날이라면 더 좋아요. 온 의식을 귀와 코에 집중에서 빗방울이 보도블록을 때리는 소리와 약간의 풀내음과 비릿한 흙 냄새에 집중해 보는 겁니다.

퇴근할 때는 가급적이면 전철 말고 버스를 이용하세요. 이번엔 피부에 집중해보죠. 온 몸의 피부에 신경을 집중해서 하루가 다르게 따뜻해지는 밤바람을 느껴보세요. 바람에 수풀을 스치느라 우석거리는 소리도 들릴 거에요. 당신의 감각기관인 눈과 귀, 코와 피부를 양동이로 생각하고 그 양동이에 감각이라는 물을 가득 채운다는 느낌으로, 그저 감각과 자극만으로 당신의 전부를 채우세요. 우리의 과활성화된 DMN을 잠재우고, 우리의 뇌가 안과 밖 모두를 적절 하게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SOLUTION 2 ‘멍~’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명상법

내일 출근할 때 한번, 점심시간에 한번, 퇴근시간에 한번. 모자라다면 창가에 가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의 의식을 나에게서 빼내 세상으로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죠. 그동안 집중해왔던 자신의 위기와 의무와 과거와 미래에서 빠져나와서 오직 이 순간 내가 느끼는 세상에 집중해 보는 겁니다. 세상이 조금 더 생생해질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좀 더 명확해지고,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속에 조용해질 겁니다. 내 자신에게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봄으로써 오히려 마음이 고요해지는 이 행위를 어떤 사람들은 ‘명상(meditation)’이라고도 부르더군요.

복잡한 기법 대신 당장 할 수 있는 간단한 행위를 제가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울은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고 우울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내’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울의 반댓말은 행복이 아니라 활력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루에는 내가 있습니다. 나의 하루에는 더 이상 나만 있지 않습니다. 의무와 해야할 일로 가득찬 나의 하루에서 내가 세상의 무엇을 담아가지고 돌아갈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요.

권순재 정신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일하며, 정신의학신문, EBS <권순재의 마음상담소> 등에 기고 및 연재를 통해 세상사에 지친 이들의 마음챙김을 돕는다.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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