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의 삼분의 일 이상을 일터에서 보낸다. 그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건 당연한 직장인으로서 갖게 되는 당연한 욕망이다.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 일이 나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유용하게 보냈다는 만족도 커지지 않을까. 대한민국 대표 광고인, TBWA 조직문화연구소장 박웅현. 1988년부터 일을 시작한 그는 “일의 본질이 ‘밥벌이’임을 전제하고 내 일에 가치를 불어넣으라”고 말한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에 도전한다’ ‘생각이 에너지다’ 등 시대를 관통한 그의 카피는 일을 잘하고 싶어 가치를 부여한 결과물이었다. 업을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일과 삶의 가치를 더욱 키우는 방법이었다. 내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첫걸음은 나의 운명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했다.
Q. 광고계에 오랜 기간 몸담으며 일에 대해 많이 고민하셨을 듯합니다. 일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일의 본질은 생업입니다. 내 노동을 지불한 대가로 통장에 돈이 찍히잖아요. 이건 숭고한 겁니다. 자아실현은 두 번째 문제이지요. 자아실현을 위해 통장에 돈이 찍히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대개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가 힘든 교육 과정을 거치고 취업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자아실현보다 먹고 살 방법을 찾는 거니까요. 이 부분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의 본질이 현실을 직시하는 거라면 여기에 어떤 가치관을 더할지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대부분 밥벌이를 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나의 성장을 도모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아왔고 상식으로 여기니까요.
Q.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밥벌이를 ‘잘’하는 걸까요?
저를 대입해 설명해보죠. 저는 어떤 사명감이나 있거나 운명적으로 광고계에 입문한 건 아니에요. 신문 기자, 작가, PD의 문을 두드렸지만 문이 열리지 않아 3지망으로 선택한 게 광고였어요. 프리랜서로 일할 용기도 없었어요. 일정한 월급이 없는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죠. 광고계는 특별한 자격증이나 조건이 요구되지 않아 진입 장벽은 없지만 그만큼 살벌한 곳이었어요. 살아남으려면 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고인이 되면 매달 월급은 들어오지만 잘하지 않으면 5년 후에도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고 보장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창업할 용기도 없으니 유일한 선택지는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을 잘하기 위해 좋은 문장을 쓰는 카피라이터를 따라다니고 회의할 때 열심히 듣고 쓰고 좋은 책을 보면서 노력했습니다.


Q. 가치를 좇아 일을 선택한 경우도 있겠지만, 소장님은 일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가치를 찾아야 했군요. 선택한 일에서 어떤 가치를 찾았는지요?
내가 어떤 직업을 선택했든 ‘아모르 파티(운명을 사랑하라)’를 떠올렸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지요. 광고를 선택할 때만 해도 광고가 과장을 하고 소비를 조장한다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돈을 위해 과장을 잘할 자신은 없었어요. 내 일에 가치를 부여해야 했죠. 그때부터 생각해봤어요. 어떻게 해야 광고가 가치 있는 일임을 입증할 수 있을지. 좋은 메시지를 던지면 기업과 소비자가 좋아하는 사례가 있더군요. 애플의 ‘Think Different’나 나이키의 ‘Just Do It’은 기업 제품을 팔기 위한 카피잖아요. 그럼에도 애플을 혁신적이고 영감을 주는 기업으로 바라보고, 나이키는 좌절을 겪는 젊은이에게 도전하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인식하는 데 카피가 영향을 미쳤어요. 광고로도 보편 가치를 입증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에 도전한다’ ‘생각이 에너지다’가 나온 거죠. ‘나에게 일이 뭐지, 자아실현을 위한 선택인가’ 생각해 보면 아니었어요. 먹고 살려고 한 거예요.
Q. 많은 직장인들이 일을 밥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그 이상의 가치가 있길 바랍니다.
어떤 일을 선택했든 스스로 내 일의 가치를 봐줘야 해요. 이게 ‘아모르 파티’입니다. 물론 직업 선택에 후회되고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누가 밀어서 그 자리에 있습니까? 내가 이끌고 온 자리예요. 이걸 받아들이면 운명을 사랑하기 쉬워요. KCC에 계신 분들 중에도 일이 아주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 있을 수 있죠.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싶으면 생각해 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내가 잘 만든 도료가 다른 사람에게 안전을 제공하는 기본일 수 있겠지요.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당시의 가장 유리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 태도가 미래를 가장 좋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하루하루 내 일에 성의를 다하는 거죠.
Q. 업을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일과 삶의 가치를 더욱 키우는 셈이겠군요.
맞습니다. 내 일의 가치, 나의 생김새와 나이, 자리 등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해 줘야 합니다.
Q. 광고업 종사자는 누구보다 창의성이 돋보이는데요.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창의적인 결과물로 도출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견(見)’이 창의성의 시작이에요. 시청(視聽)하지 말고 견문(見聞)하는 거죠.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얼마큼 깊이 보느냐에 따라 창의성이 다르게 올라옵니다. <생각의 탄생>이란 책에 “(창의적인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생각을 한다”는 내용이 나와요. 창의성은 문제를 풀어내는 힘입니다. 가령 총무 부서에서는 얼마큼의 비용으로 더 효과적인 설비를 구입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고 해보죠. 나한테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봐야 해요.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그 다음 단계를 풀어가는 데 혼자서는 힘드니 집단 지성이 필요하고요. 집단 지성을 하려면 듣는 힘이 있어야겠죠. 여러 담론이 나올 수 있도록요.
Q. 듣는 힘은 어떻게 기를까요? 주로 후배들과 일하는 소장님 입장에서는 후배가 불편하지 않게 의견을 잘 개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요.
아까 일에 가치를 부여하자고 했죠. 후배의 말에도 가치를 두고 들어보세요. 후배는 툭 전진 말인데 ‘그거 괜찮은데?’ 하고 가치를 부여하면, 후배는 ‘내가 한 말이 그렇게 멋진 말이 되는구나’ 생각할 거예요.
Q. 경험이 많은 선배 입장에서는 후배의 생각이 실패가 뻔히 보이는,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로 느껴질 때도 있잖아요.
창의성은 삶을 대하는 태도예요. 과연 실패하지 않을 일, 터무니없지 않은 일이 창의적일까요? 실패할지도 모르는 건 안 해 본 일이잖아요. 어처구니가 있으면 다른 사람도 생각했을 거고 시도하지 않았겠어요? 물론 설치업·금융업 등은 다르겠지만 저는 광고업에 있습니다. 설령 실패가 명백히 보인다고 해도 티를 내면 안 돼요. “이건 아니야. 그렇게 접근하면 일이 돌아가질 않아”보다 “다른 의견은 또 없을까요?”라고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는 거죠. 정 말하고 싶으면 사석에서 “그때 안 될 것 같았는데 마음 다칠까봐 말 안하고 넘어 갔어” 정도로 말하면 되고요.
박웅현 소장이 말하는 ‘일을 잘하는 3가지 방법’
1. 내 일의 본질을 인정하라 – “밥벌이는 숭고하다”
2. 내 운명을 사랑하라 – “아모르 파티의 태도”
3. 깊이 보고, 잘 들어라 – “견문의 힘”
Q. 이쯤 되니 조직문화연구소에서 추구하는 조직 문화가 궁금합니다.
(그의 명함 뒷면에는 조직문화연구소의 방향이 써 있었다.) “모든 우리 회사 직원은 고객이다.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회사의 철학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퍼뜨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우리 회사 직원을 우리 회사의 팬으로 만든다.” 제가 사회생활을 1988년에 시작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회사의 관리 대상이었어요. “그건 하지 마세요” “몇 시까지 나와야 해요” “거기서 그런 말은 하면 안 돼요” 등을 듣는 미필적 고의의 대상이었죠. 그 생활을 오래 하면서 나의 자발성이 없어지더군요. 회사에 가면 “그래서 또 뭐 해야 하죠?” “뭘 하지 말라고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Q. 직원을 고객으로, 팬으로 여기니 조직에 변화가 생겼나요?
궁극적으로 성과가 올라가요. 아이 분유값 벌려고 나오는 사람과 일에 보람을 느끼고 고객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사람의 표정과 자세가 같겠습니까? 그게 1년이 쌓이면 퍼포먼스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광고주에게 정말 중요한 일을 한다고, 사회에 좋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5년을 일하면 어떨 것 같나요? 궁극적으로 성과가 올라갑니다. 그 과정에서 소통과 웃음이 늘고요. 출근하는 표정이 밝아지는 사람이 늘어날 겁니다. 선순환 고리에 딱 들어서면 결국 퍼포먼스가 올라간다고 믿습니다.
”KCC는 단단한 기업이에요. 제대로 된 실력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운이나 일시적으로 기업이 유지되는 게 아니라 그 기업이 존재할 만한 단단한 이유가 분명해 보였어요.”
Q. 10여 년 동안 KCC와 협업을 해오셨는데요. KCC는 어떤 기업이란 인상을 받았나요?
KCC와는 경쟁 PT에 참여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게 됐는데요. KCC는 단단한 기업이에요. 제대로 된 실력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운이나 일시적으로 기업이 유지되는 게 아니라 그 기업이 존재할 만한 단단한 이유가 분명해 보였어요. KCC라는 기업의 업태가 안전과 밀접해서 그런지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럽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그런 점이 지금의 KCC가 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 1961년생으로 광고계의 배테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의 최전선에서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포착하기 위해 날이 무뎌지지 않도록 계속 갈아 왔을 듯한데 비결이 있습니까?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다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긍정적으로 기여할 방법을 생각합니다. 3년 차 박웅현과 20년 차 박웅현이 회의실에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니까요. 내 위치를 생각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주장을 덜어낼지 고민해 왔습니다. 매번 옳은 판단을 하는 건 아니겠죠. 단어나 행동에 대한 후회도 하겠지만 실패가 두려워서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실수하면서 판단을 해 나가는 거죠.
Q. 우리 사회도 그렇고 일하는 환경이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특히 AI가 등장하며 일하는 환경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는데요, 이럴 때일수록 잃지 말아야 할 것과 유연성을 키워야 하는 부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요즘은 ‘완전히’ 바뀌었지요. 변화는 늘 있었지만 요즘처럼 변화가 큰 적이 없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 시대의 키워드는 시스템이었어요.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시스템 덕분이죠. 지금은 애자일(Agile)이 됐고요. 그럼에도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분리해야 합니다. 가령 인스타그램 DM이 없던 시대에는 편지가 오갔어요. 사람이 주고받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거예요. 손편지는 DM으로 변했지만 그 안에 변하지 않는 마음은 따라가면 됩니다. 변하지 않은 것들은 추구하고 변할 것은 그 변화에 편승하면 돼요. ![]()
TBWA 조직문화연구소장 박웅현
*경력
광고계의 녹슬지 않는 베테랑. 광고인에게 영감을 주는 광고인. 제일기획에서 광고 일을 시작해 현재 TBWA KOREA 조직문화연구소를 맡고 있다. 인문학적 감수성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많은 광고를 만들었다. ‘넥타이는 청바지와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생활의 중심’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등의 카피는 좋은 동료들과 협업하며 한 시대의 생각을 담아내 이룬 결과물이다. <문장과 순간> <여덟 단어> <책은 도끼다> <일하는 사람의 생각> <천천히 다정하게> 등을 펴냈다.

댓글 17개
나에게 일이란 삶의 동력이다.
나에게 일이란 가치를 창출한다.
이전 글
‘심상사성(心想事成)’ 마음으로 지속가능한 안전문화 선도한다!
다음 글
KCC와 미라클보이스앙상블의 첫 정기연주회기적을 싹 틔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