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코치
황정민
KBS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뉴스 앵커, 라디오 DJ, 방송 진행자 등 30년 넘게 ‘말’을 업으로 삼아온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저서 <내 뜻대로 말한다는 것>을 통해 말하기의 본질과 자신만의 스킬을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현재는 현대홈쇼핑에서 <황정민 쇼>를 진행 중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말이 시작된다. 보고를 하고, 질문을 던지고, 피드백이 오간다. 직장인의 하루는 생각보다 많은 말로 채워진다.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일과들. 30년 넘게 마이크 앞에 서 온 황정민 아나운서는 그래서 말하기 스킬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말 한마디로 나를 브랜딩 할 수 있는 시대,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진심을 담은 한마디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에게 일과 관계 모두 업그레이드할 비즈니스 언어의 기술을 물었다.
완벽한 기획서보다 명확한 전달이 먼저다
밤새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발표 후 돌아온 냉정한 피드백. “그래서 결론이 뭐야?” 아무리 분석 능력이 뛰어나고 기획서를 잘 쓴다고 해도, 그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간 쏟은 시간과 노력은 쉽게 묻히고 만다. 황정민 아나운서는 말하기 스킬을 단순한 개인의 역량이 아닌, 조직 내 관계와 성과를 이어주는 다리로 본다.
“회사는 협업을 하는 곳이에요. 서로의 감정을 해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내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소통 없이 자기 페이스대로만 일을 밀어붙이면 한두 번은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동료로 낙인찍힐 수 있어요.”
직급이 올라갈수록 소통의 무게감은 더 선명해진다. 실무만큼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요. 머릿속에 완성된 그림이 있는 PD는 NG를 많이 내지 않아요. 명확한 방향성 없이 촬영하면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옛말은 비즈니스 언어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이젠 말 한마디로 수억 원의 가치를 만들고, 나를 브랜딩하는 시대다.
협업을 완성하는 대화법
제조·연구·영업 등 다양한 직군이 긴밀하게 얽혀 있는 KCC. 이런 환경에선 부서 간 소통의 한 끗이 협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 황 아나운서는 서로 언어가 다른 나라들이 소통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상대 직군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압박을 받으며 일하는지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의 언어로 말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영업직은 연구직에게 데이터를 중심으로, 연구직은 제조직에게 현장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거죠.”
기준을 통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주 내로’라는 모호한 표현 대신 ‘이번 주 금요일 오후 3시까지’로, ‘최대한 많이’ 대신 ‘최소 500개 이상’으로 구체화해야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방어기제를 허무는 말하기도 필요하다. 자신의 업무나 직종이 공격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본능적으로 벽을 치기 때문이다. 지시하듯 “수정해 주세요”라고 말하기보다 “현장 작업자들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설계 수정이 필요합니다”와 같이 공동의 목적을 먼저 공유하면 대화의 결은 달라질 수 있다.
청중을 향해 말할 때는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반응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황정민 아나운서 제공
청중을 움직이는 발표의 기술
직장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업무 스킬 중 하나가 바로 프레젠테이션이다. 이때 흔히 범하기 쉬운 실수는 슬라이드의 글을 줄줄 읽는 것이다. 황 아나운서는 읽기만 하는 발표는 청중을 지루하게 만들 뿐이며,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반응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첫 문장은 현실적인 주제로 시작해 보세요. ‘이번 분기 비용의 30%를 절감할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청중이 가장 고민하고,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은 문제부터 꺼내는 거예요. 숫자에도 스토리를 입혀보세요. 혁신적이다, 신상이다 식의 언급보다 이 기술을 도입했을 때 생산성을 얼마나 높이고, 잔업은 얼마나 줄어들지를 알려주는 거죠.”
그녀 역시 홈쇼핑 방송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제품 설명 대신 내가 이 제품을 일상에서 어떻게 쓰는지, 실생활에 기반한 에피소드를 얹었을 때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발표의 기술은 준비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황 아나운서는 말하고 싶은 내용을 토씨 하나까지 전부 적어 보고, 소리 내어 읽으며 시간을 미리 체크하라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처음 3분을 완벽하게 준비하라고 강조한다.
“시작 부분만 완벽히 넘어가면 그 다음엔 어차피 내가 다 아는 내용이니까 자신감이 생겨요. 그래도 떨린다면, 저처럼 앞에 있는 청중이 나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세요. 실수를 잡아내려는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순간, 할 말을 다 못할 수 있거든요.”
격려할 때는 결과보다 과정과 행동을 콕 짚는 칭찬이 상대방에게 힘이 된다.
동료를 대하는 ‘말의 온도’
‘말’이 가진 힘은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일 잘하는 사람은 상대와 상황에 맞게 말의 온도를 조절할 줄 안다. 상사를 설득할 때는 결론부터 꺼내는 두괄식이 효과적이다. 장황한 빌드업보다 대안을 먼저 제시하고, 설명을 덧붙이는 것. 상사가 판단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배려의 말하기다. 부하 직원이나 동료를 격려할 때는 결과보다 과정과 행동을 콕 짚는 칭찬이 상대방에게도 힘이 된다.
“매출이 잘 나왔다는 칭찬보다 ‘오늘 제습기 특장점을 정확히 설명해 줘서 반응이 좋았다’처럼 구체적으로 짚어주면 칭찬받는 사람도 자신이 무엇을 잘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거든요.”
막연한 칭찬은 자신감을 불어넣기보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 되기 십상이다. 지적도 마찬가지다. 고쳐야 할 부분을 말하기 전에 우리가 한 팀이라는 전제를 깔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지적받더라도 내가 이 조직에서 홀로 외롭게 서 있다는 감정이 들지 않고,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엔 지적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던 때가 있었는데, 비판도 ‘우리 모두 잘 되려고 하는 말’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오히려 도움이 되더라고요.”
한 배를 탔다는 동료의식이 지적을 격려로 치환한다.
황정민 아나운서는 아나운서 시절 말하기 훈련법에 도움이 된 '3분 스피치'를 KCC 구성원들에게 추천했다. 사진 KBS
누구나 이야기꾼이 되는 말하기 연습
KBS 신입 아나운서 시절, 황 아나운서에게 가장 도움이 된 훈련법은 단연 ‘3분 스피치’였다. 하나의 주제를 3분 안에 이야기로 구성하고 발표하면, 선배 아나운서들이 피드백을 주는 방식이다.
“뉴스 앵커로 커리어를 시작한 저는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사실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데 익숙했어요. 같은 이야기도 건조하게 표현해서 라디오 DJ를 처음 맡았을 때 어려움이 있었죠. 그때 다시 꺼내 든 게 3분 스피치였습니다. 처음에는 3분이 정말 길었지만, ‘첫눈을 밟으며 출근하는 느낌’ 같은 쉬운 주제부터 차근차근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봤어요.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프레젠테이션뿐 아니라 사석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녀가 특히 강조하는 건 소리 내어 말하기다. 머릿속으로만 반복하면 자기 목소리에 익숙해지기 어렵다. 스마트폰 녹음 기능을 활용해 책 한 페이지를 설명하듯 말해보고 들어보는 것을 권한다. 예상외로 화난 것처럼 말하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거울을 보며 연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말할 때 입 모양이 한쪽으로 쏠리지는 않는지, 표정은 자연스러운지 확인하며 교정할 수 있다.
‘퍼즈(puase)’도 꾸준한 연습으로 체득할 수 있는 말하기 스킬 중 하나다. 이노우에 도모스케의 저서 <심리 대화술>에 등장하는 퍼즈(puase)는 말과 말 사이에 의도적으로 두는 잠깐의 멈춤을 뜻한다.
“신뢰를 줄 수 있는 대화 기술로 전략적 퍼즈(puase)를 추천해요. 한 템포 호흡을 조절하는 침묵은 상대방을 내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고, 말의 진정성이나 신뢰도를 높여주거든요. 다만 퍼즈(puase)가 너무 길어지면 답답해 보일 수 있어서 훈련이 필요합니다.”
퍼즈(puase)를 잘 구사하려면 경청이 선행되어야 한다. 잠시 멈추는 순간, 상대의 이야기를 한 번 더 음미한 뒤 “그러니까 부장님은 지금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죠?”라고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밀도는 달라질 수 있다.
황 아나운서는 소통에는 완성도, 끝도 없다고 말한다. 그녀 역시 처음부터 완벽한 스킬을 갖춘 건 아니었고, 홈쇼핑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선 새로운 언어를 익혀야 했다. 그래서 더 단호하게 꼽는 ‘말 잘하는 비법’은 꾸준함이다. 타고나는 것이 아닌 연습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매일 보고하고, 회의하고, 협업하는 KCC 구성원들에게 연습할 기회는 이미 충분하다.
KCC구성원 Q&A
Q. 회사업무를 하다보면 협력사나 거래처 등 첫 만남의 순간이 생깁니다.
첫 만남에는 특히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과 신뢰를 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노하우나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황정민 아나운서’s Tactics
- 상대 직무의 특성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고, 모호한 표현 대신 구체적인 기준으로 소통할 것
- 프레젠테이션은 첫 3분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청중이 가장 고민하는 현실적인 화두로 첫 문장을 시작할 것
- 설득은 결론부터 말하는 두괄식으로, 칭찬은 결과보다 과정과 행동을 디테일하게 짚어줄 것
- 스마트폰 녹음 기능으로 내 목소리를 들어보고, 거울 앞에서 자연스러운 표정을 만들 것
- 말과 말 사이, 의도적으로 짧게 멈추는 ‘전략적 퍼즈(puase)’를 연습할 것
- 대화법을 닮고 싶은 사람을 관찰하고 따라 하며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볼 것
- 말하기 전, 왜 이 말을 하는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상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정리할 것
댓글 18개
누구나 들어봤고, 알고 있지만 습관적으로 지키기 힘든 부분을 다시 복습하게 되는 거 같네요. 끝까지 경청할 것, 공감,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이 정리될 것. 첫 만남에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거나 깊게 다가간다면 경계심이 생긴다는 부분까지...짧은 영상에서 생활 속 배려와 팁을 다시 머리에 새기고 갑니다. 무더워 건강 유념하세요.~!
“스마트폰 녹음 기능으로 내 목소리를 들어보고, 거울 앞에서 자연스러운 표정을 만들 것” 이 문구가 인상적으로 남게 됩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어떤 말이든 듣는 사람이 중요시 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구를 보면서 나는 말하면서 상처되는 억양과 표현을 하지는 않았는지, 상대방에게 불편한 표정을 보이진 않았는지 생각이 들게하고, 이 방법을 통해 다시 한번 저의 자세, 표현을 직접 보고 고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정보를 잘 전달 할 수 있는 이야기 꾼이 될 수 있게 꾸준히 연습 해 보겠습니다.
요즘 강의도 하시네요! 스피치 연습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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