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리콘 웨이퍼 제조기술의 새 패러다임을 만들다
단결정 실리콘 웨이퍼는 실리콘 태양전지와 반도체 소자의 핵심 소재다. 단결정 실리콘 웨이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체 기판의 윗부분에 다공 구조로 된 실리콘 분리층을 하향식으로 형상화시킨 후, 성장 과정을 거쳐서 벗겨내고(박리) 분리해야 한다. 박리-분리 과정에서 모체 기판의 표면 일부가 같이 떨어지게 되므로 모체 기판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표면 평탄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몇 차례 사용한 후에는 결국 폐기해야 해서, 결과적으로 제조 비용이 증가하는 요인이 됐다. 이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오준호 박사팀은 충북대 김가현 교수팀과 함께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 연구에 나섰다.
“태양전지·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사용하는 실리콘 웨이퍼는 대부분 일본과 독일 등 해외에서 수입하는 실정인데, 국내 태양전지 분야의 실리콘 웨이퍼 제조업체는 없다시피하고 반도체 분야는 아직 대량의 수요를 감당할 여력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만일 수년 전 일본의 수출규제 같이 변수가 생긴다면 우리 산업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겠죠. 따라서 산업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제조 기술력을 확보해야 하고 국내에 제조업체도 많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단기간에 해결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우리 연구팀은 발상의 전환으로 장벽을 넘어보고자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숨에 몇 단계 과정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하는데, 단결정 실리콘을 모체 기판 위에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으로 성장시킨 다음 통째로 떼어내는 방법을 생각했죠.”

제조 비용은 줄이고, 재활용성은 높인 일석이조 효과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플라즈마 에피탁시(단결정 기판 위에 플라즈마를 이용한 가스분해반응을 통해 단결정 소재를 성장하는 기법) 실리콘을 역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동안 플라즈마 에피탁시 실리콘은 제조 공정 중 생겨나는 불량 취급을 받았지만, 공동연구팀은 이를 분리층으로 활용함으로써 간단하게 단결정 실리콘을 모체 기판에서 분리해냈다. 예를 들면 종이의 절취선을 뜯어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역발상의 아이디어로 실리콘 웨이퍼 제조기술의 새로운 혁신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됐다.

사실 플라즈마 에피탁시 실리콘에 대한 연구는 약 20년 전부터 진행됐지만, 초창기에는 결함 밀도가 높고 다공 구조라는 특성상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불량으로 인식하는 정도였다. 이 물질의 발생을 줄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연구가 대부분이었고, 공동연구팀에 뛰어들었을 때는 10여 년의 연구 격차와 더불어 제반 기술과 산업 기반의 격차 등 결코 좋은 여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함 밀도를 줄이는 대신 증가시키는 역발상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웨이퍼를 손쉽게 분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체 기반을 거의 손상없이 재사용할 수 있는 기법을 터득해냈다.

“밀가루에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들다 보면 공기가 안으로 침투해 부드러워지죠. 마찬가지로 실리콘 웨이퍼 제조 공정에서 결함 부위의 구멍을 이용해 떼어내는 부분을 약하게 만들면, 흡사 절취선을 따라 떼어내듯이 분리할 수 있어요. 표면도 매끄럽고 모체 기판도 보존할 수 있어서 거의 무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셈입니다. 또한 제조 비용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습니다.”
차세대 반도체 분야 첨단 소자의 응용 가능성 확보
공동연구팀의 이 연구성과는 재료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IF 30.849)>에 소개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2021년 10월 14일자). 더욱이 이 기술의 혁신성을 인정해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가 주목한 부분은 기존의 반도체 공정(화학기상증착법: Chemical Vapor Deposition, CVD) 장비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실리콘 웨이퍼 제조기법을 제시했다는 점, 특히 다양한 산업 기술에 널리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준호 책임연구원이 강조하는 것도 다양한 첨단 소자에 응용 가능하다는 부분이다.
“이 기술은 반도체·태양전지·디스플레이·센서 공정에 널리 쓰이고 있는 CVD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실리콘 웨이퍼를 이용한 다양한 소자 제작에 접목시키면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됩니다. KCC처럼 기초 소재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이 기술을 활용한다면 경쟁력을 더욱 배가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실리콘 웨이퍼 제조기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이 성과는 앞으로 관련 신소재에 대한 연구의 시작점 될 것이다. 공동연구팀은 나노 다공 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응용가능한 분야를 탐색할 계획이다.
“후속연구와 함께 다양한 소자 제작기술을 연계함으로써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연구팀은 원천 연구는 물론 상용화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산·학과 공동으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미래기술의 청사진을 함께 그리는 일에 우리 연구팀이 징검다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오준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울산차세대전지연구개발센터 책임연구원
신소재공학 분야에서 광전소재·소자 연구를 전공하고 공학박사 과정을 마친 후, 2014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을 거쳐 2017년부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몸담고 있다. 현재 울산에 소재한 울산차세대전지연구개발센터에서 실리콘 이종접합(SHJ)과 태양전지, 에피탁시 실리콘 웨이퍼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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