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연구실] 자연의 섭리에서 얻은 아이디어

홍합의 접착력으로 피 안나는 주사바늘을 만들다

자연의 모든 생물체는 처음 출현한 후38억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적응과 진화를 거치며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인간의 그 어떤 발명품보다 안정적이고 완성도 높은 생물체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고 모방하는 기술이 바로 ‘생체모사 기술(Biomimetics)’이다. 라이트 형제는 대머리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모습에서 비행기를 개발했고, 벨크로 테이프는 엉겅퀴 씨앗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이해신 교수는 바닷속에서 홍합이 바위에 접착하는 메커니즘을 모방해 다양한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홍합은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도 미끌미끌한 바위에 딱 붙어있습니다. 족사라고 하는 접착력을 지닌 하얀 실을 뿜어서 다른 물체에 붙이는 거죠. 이를 이용해 바위는 물론 바다를 떠다니는 나무, 스티로폼, 쓰레기 등 어디에나 붙습니다.”

홍합 단백질의 접착성을 처음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다. 3년간 홍합의 족사가 지닌 인장력과 접착강도를 측정한 연구결과는 2007년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2018년에는 화학 및 재료분야 논문 인용지수 전 세계 1%에 들어가는 성과도 거두었다. 물론 관찰과 연구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해신 교수는 홍합 족사의 접착력을 모방해 피가 나지 않는 주삿바늘과 접착성 의료용 지혈제를 개발했다.

“부산대학병원과 피가 나지 않는 주삿바늘을 암 조직에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암 조직을 떼내고 재발을 막기 위해 항암제를 주사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주삿바늘에 홍합 접착단백질에서 추출한 얇은 막을 입히는데, 이 막이 피부나 혈관에 닿으면 하이드로겔 형식으로 바뀌며 바늘구멍에 덮어 출혈을 막는 거죠. 이를 통해 출혈에 의한 전이의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KCC와 친환경 방담도료를 위해 함께 고민

지난 2017년에는 홍합의 접착 원리를 반대로 이용해 KCC와 함께 방담도료에 관한 연구도 진행했다. 선박 표면에 따개비나 해조류 같은 것들이 달라붙어 선체의 저항을 높이고 연료 소비를 늘어나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KCC와 이해신 교수 측은 돌고래 피부의 굴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친환경 무독성 실리콘 도료의 도장방법을 고안해냈다.
“생체모사 화학을 연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조와 모양을 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저희는 실리콘 도료를 구조적으로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생물체가 어떻게 움직여서 물체에 달라붙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접착을 시도할 때 ‘좋은 환경이 아니구나’라고 인식을 심어주는 거죠. 돌고래 피부를 살펴보면 홈이 촘촘하게 굴곡을 이루고 있는데, 이 굴곡 때문에 마찰력이 줄어들어 따개비가 들러붙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를 도료 분사 후 마르기 전에 굴곡을 만드는 아이디어로 연결했습니다.”

작년에는 홍합의 접착 단백질을 이용해 염색이 필요 없는 갈변샴푸도 개발했다. 홍합의 접착 단백질에 들어있는 폴리페놀이라는 성분이 산소와 만나 갈변하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강한 독성의 화학약품으로 만들어진 염색약은 두피에 많은 자극을 줍니다. 피부가 약한 어르신들은 고통이 클 수밖에 없죠. 폴리페놀은 홍합은 물론 과일, 곤충 모든 동식물에 들어있는 성분으로 인체에 무해합니다. 갈변 역시 자연 현상이기 때문에 인공 염색약 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모발 색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연, 그리고 인간의 공존을 위한 과학자의 고민

이해신 박사는 앞으로 의료 뷰티 분야에 관련 접착 단백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계속 고민한다는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탈모인들을 위한 모발 접착 기술 개발도 생각 중이다. 두피를 잘라내는 이식보다 위험성도 적고 경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가발을 쓰면 더운 것도 문제인데 솜털이 나면서 가발을 밀어내 두피에서 뜨는 문제가 있어요. 또 두피 이식술은 기껏 어렵게 심은 모발들이 5년, 10년 후에 다 빠지죠. 그래서 모발 자체를 잘라서 두피에 붙이는 기술을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 붙어있게 할 기술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새로 붙인 모발을 이물질이라 인식해 면역 반응을 일으켜 밀어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 등을 새롭게 이어가고 있다.
“모든 생체모사 기술은 결국은 인간 삶의 질은 개선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개선이라는 것은 편리일 수도 있고 자연과의 조화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독자분들 중에 새로운 소재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본인이 하는 일의 의미를 계속해서 찾다 보면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 옵니다. 저 역시 오랜 기간 실마리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힘들었지만 결국 끊임없이 질문하다 보니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 깨달음의 순간이 우리 삶의 질을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가 저를 계속 이끄는 원동력입니다.”
인간의 기술은 자연 속 생물체를 모사하는 것으로 함께 발전해 왔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지구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동식물은 급격한 변화에 맞춰 진화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갈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동물 150만 종, 식물 50만 종이 있다. 각각의 생물체가 어떻게 환경에 적응하는지를 살펴보면 인간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생체모사 기술을 계속해서 집중해야 하는, 이해신 교수의 연구를 계속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해신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석좌교수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세포생물학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고분자화학을 전공했다. 미국 시카고대학 화학과에서 단백질 구조를 연구한 뒤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홍합 단백질 논문을 발표했다. 바다 생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잘 연구해 계속해서 인류에 이바지 한다는 포부를 지녔다.

 
댓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