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파란 융합
점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은 애정이 살아 숨 쉬듯 꿈틀거린다.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는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한국 현대회화의 독창성을 구축한 화가다. 특유의 서정성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서 발현됐는데, 파란 밤하늘·별·달과 같이 말간 자연이 영롱하게 빛난다.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라고 했던 김환기(1914~1973)는 일평생 동양적인 우주관에 바탕을 둔 그림을 그렸다. 일본 유학 시절과 한국 활동 시기를 거쳐 파리 시절에는 구상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줬고, 뉴욕 시절에는 완전한 추상미학을 선보였다. 한국 고유의 화풍을 단순하게 살려내려 고심했던 김환기는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국제 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역력히 보였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고 고백했다.


1963년작 <운월>은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블루톤에 달·구름·배 등 한국적 모티브가 응축돼있어 ‘유화물감으로 그린 한국화’라는 평을 받았다. 1950년작 <항아리를 인 여인>은 <여인의 달과 항아리>라는 제목으로도 전해진다. 김환기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달항아리’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인은 바로 아내이자 뮤즈이며 예술적 동지였던 김향안을 모델로 했다. 둥근 얼굴에 눈이 크고 콧날이 오똑한 단발 여인은 김향안의 실제 모습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김향안은 천재시인 이상(1910∼1937)의 아내였으나, 이상이 요절한 뒤 김환기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에 이르렀다. 미술시장의 중심인 파리에서 활동하고자 한 김환기를 위해 먼저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작품목록을 들고 화랑을 돌며 파리생활의 터를 마련한 것도 김향안이었다. 김환기와 사별 후 30년을 더 산 김향안은 남편의 예술세계를 정리하며 일생을 보냈다. 회고전을 추진하고 파리·뉴욕·서울에 환기재단을 연달아 설립했으며 환기미술관도 세웠다.
점점이 새긴 그리움, 하늘의 별이 되었구나


김환기는 1964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가한 뒤 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변방의 화가에게 쉽게 자리를 내줄 미국이 아니었기에 생활은 늘 궁색했고, 그럴수록 추상의 세계로 파고들어 전면점화(全面點畵)가 연달아 탄생했다. 전면점화는 맑은 액체가 종이에 스며들며 마치 화면에서 서서히 새어나오는 듯 보이는 그림으로, 해외 평론가들은 ‘동양적 추상화’라고 평했다. 김환기는 고국의 산천과 벗들을 향한 그리움을 점에 투영해 종이 위에 올렸다. 파랑을 필두로 원색에 가까운 색채를 애용하다 사망한 해인 1974년에는 검은색을 썼는데, 죽음을 예감한 듯 찍어나간 묵점(墨點)의 행렬이 처연하다.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약 132억 원) 기록으로 유명한 <Universe>는 마치 두 은하가 하나의 중심을 품고 맴도는 느낌을 주는 대형 작품으로, 짙푸른 소용돌이가 관객을 끌어당기며 그림에 몰입하게 만든다. 점을 일률적으로 그려 균형을 이루고, 이들이 모여 완성된 하나의 우주가 안정감을 안긴다.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 김환기의 추상화는 동서양을 융합하는 조형미로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전면점화로 구축한 Blue Universe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흩어지고 다시 모여 전면점화가 됐다. 1970년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점을 둘러싼 색채의 농담·번짐 차이로 인해 마치 별빛이 부유하는 듯한 우주적 공간감을 준다. 점을 한 번만 찍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반복해서 찍어 평면임에도 깊이가 느껴지는데, 점이 먹처럼 번져나가 ‘동양의 정서를 서양 추상화에 도입했다’는 평을 받았다. 거대한 푸른빛을 띤 <고요>는 한껏 밝고 환한 점들이 눈길을 끈다. 무수한 점들이 하나하나 번지는 모습이 마치 광채를 내뿜으며 숨 쉬는 듯하다.
하늘의 별을 따다 화폭에 수놓는 작업은 녹록지 않았다. 김환기는 살아생전 자신을 ‘예술노동자’라고 표현했는데, 매일 16시간 이상 붓질하며 쉼 없이 그리고 또 그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김환기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후대에 남긴 화가가 됐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종일 작업에 몰두한 그가 남긴 작품은 1,000여 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이중섭(총 500여 점 이하 추정) 등 다른 화가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작품 수로, 한국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의 태동을 살펴볼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김환기의 일기에는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는 글이 적혀있다. 끝 간데없이 이어지는 계절의 서사를, 하나로 표현할 길 없는 세상의 순리를, 김환기는 사력을 다해 단 하나의 점에 담았다. 그가 캔버스 뒷면에 꾹꾹 눌러 적은 친우 김광섭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이 까마득한 우주에서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상념들로 가슴이 답답할 땐, 거장이 남긴 광활한 우주를 넋 놓고 바라보자. 이렇게 많은 별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보며 저마다의 우주를 찾아볼 만하다.
KCC가 제안하는 명화 속 컬러
자연이 온통 푸르게 변하는 여름은 청색의 계절이다. 청색은 생명의 탄생과 성장, 성숙을 상징하는 컬러다. 한여름의 생동하는 무드를 연출하고 싶다면 KCC가 제안하는 파란색에 주목하자. 청아한 파스텔톤의 VF0034, VG0027은 산뜻한 인테리어에 제격이고, 짙푸른 VM0149는 깊고 그윽한 느낌을 준다. KCC 공식 홈페이지와 숲으로 인스타그램을 방문하면 더 다양한 파란색 컬러와 활용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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