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진료실에 오시는 분들의 직급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분들은 어느 직급일까요? 많은 분들께서 신입사원이라고 예상하시겠지만 아쉽게도 아닙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 오시는 분들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직급들은 바로 팀장급, 중간관리자들입니다. 한 명 이상으로 되어있는 팀을 이끌고, 꽤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팀에 대한 권한이 그리 막강하지는 않은 그런 애매한 위치에 있는 분들입니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건지
똑 부러지고 유능한 중간관리자가 되려고 했더니 팀원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 찹니다. 강단 있고 리더십이 있는 중간관리자로 이미지를 바꾸었더니 팀원들 중 몇 명이 일이 힘들다고 진단서를 들고 와 휴직 신청을 합니다. 모든 걸 이해하고 들어주는 중간관리자가 되었더니 팀원들이 오히려 나를 패싱하고 자기들끼리 일을 진행시킵니다. (보통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으로요!) 마지막으로 거리를 두고 간섭하지 않는 중간관리자를 선택했더니 상사가 부릅니다. 요즘 너희 팀 분위기랑 실적이 이게 뭐냐는 거죠.
월요일이 막막한 직장러(-er)의 우울 증세
애매함. 인간을 지치게 만드는 가장 보편적인 상황 조건입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린 분들의 인생이 잘못된 선택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험한 길과 안정된 길 중에서 험한 길을, 안전으로 이어지는 길과 위험으로 이어지는 길 중에서 위험으로 이어지는 길을 골랐을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우울증 환자분들의 인생 경로를 들어보면 이분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대신 이들은, 무언가를 결정해야할 때에 아무 결정도 못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 인생에서의 선택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에서 고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A를 고르면 그 선택에 따른 어떤 선택의 문제를 감수해야 하며 B를 고르면 A를 골라서 생긴 문제는 피할 수 있지만 이번엔 B 나름대로의 문제를 감수해야 하는, ‘차악을 고르는 선택’의 향연이 바로 인생이거든요. 그렇기에 우울증은 잘못된 선택을 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선택을 망설이다가 발생합니다.

나는 ‘인간 에어백’인가요?
이렇게 ‘애매하고’, ‘차악을 선택’하는 특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중간 관리자의 업무입니다. 중간관리자는 자신과 다른 성장배경, 능력, 성격, 그 외에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차이점을 가진 사람들을 데리고 명확하고 측정가능한 성과를 내야 합니다. 이 업무를 퍼펙트하게 소화하려면 팀원들에 대한 상당히 높고 세부적인 수준의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팀원들의 성과에 따른 보상을 직접 정할 수 있어야 하고, 팀원들의 스케줄에 대한 전권 정도는 있어야 하지요. 하지만 중간관리자에게 이 정도의 권한을 주는 회사는 없습니다. 이정도의 권한을 주려면 회사 전체가 이 프로젝트를 위주로 돌아가야 하지만 실제로 회사는 한 번에 여러 종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든요.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요.
그러므로 중간관리자의 업무는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중간관리자가 성격적으로 맞는 사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중간’관리자라는 것은 ‘완벽’한 ‘불완전함’처럼 모순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사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팀을 이끌어 임무를 완수하라고 하지, 최소한의 트러블로 일을 어떻게든 가능하게 만들라고 중간관리자에게 주문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하달 받은 미션과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 다른, 차악을 피하는 게임에서 행간을 읽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좌절합니다. 나의 관리능력이 부족해서, 혹은 팀원들이 무능해서 업무가 더디게 진행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업무에 도달하려고 진심으로 노력한 결과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결국 지치거나, 분노에 가득 차서 저에게 찾아오게 됩니다. 휴직이나 퇴사를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그리고 스스로의 능력에 실망해서요.
SOLUTION 1 ‘해결’보단 ‘운영’이 목표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정신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불완전함을 없애는 완벽한 답을 찾는 것보다, 불완전함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대함과 다양함을 인정할 수 있는 유연성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은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의 총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복잡계(Complex system)를 충돌 없이 운영해야 하거든요.
즉 우리의 정신의 임무는 정신을 이루는 감정, 논리, 운동, 감각 등을 완벽하게 끼워맞추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돌아가도록 통합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중간관리자의 역할도 완벽하게 이와 같습니다. 애매하고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을 ‘통합’시켜 조직력과 운동성을 유지하는 이 게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불완전함을 없애는 ‘해결 능력’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참아내고 충돌 속에서 조직을 유지하는 ‘운영 능력’입니다.
SOLUTION 2 내 역할을 이해하고 관대해지기
당신이 운영하는 조직이 결함으로 가득 차 있나요? 팀원들이 간신히 맡은 일은 하는데 정말 제대로 이 프로젝트를 이해하는지도 모르겠고 할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나요? 서로 다른 행동 동기와 능력을 가진 이 사람들을 하나의 목적으로 이끄는 과정이 충돌과 불만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고요? 어떻게든 큰 문제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 팀이 유지될 수 있는지 나조차도 모르겠다고요? 무엇보다 도대체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나요?
정상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중간관리자’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그러니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한 중간관리자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그만 좀 괴롭히고, 자신과 팀원에게 좀 더 관대해지세요. 어떻게든 팀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신은 이 게임에서 이미 제 역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권순재 정신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일하며, 정신의학신문, EBS <권순재의 마음상담소> 등에 기고 및 연재를 통해 세상사에 지친 이들의 마음챙김을 돕는다.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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