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쪽상담소] 가까운 관계가 더 어렵다(feat. 가족 간의 적정 거리)

우리 가족은 왜 이럴까

가족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찾아오는 상당수의 환자들이 가족 간의 문제를 가진 분들이에요. 너무나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보통의 관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죠.

우리는 말을 배우고, 사회에 나가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셨는지, 형제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배워요. 그리고 이것을 인간이 가야 할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결코 이상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각자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가족들 또한 완전할 수가 없지요. 부모가 자식에게 끔찍한 행동을 저지르기도 하고, 반대로 자식이 나이 들고 병든 부모를 외면하기도 합니다. 형제간에 부모님의 유산을 가지고 싸우기도 해요. 그 정도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100개의 가족이 있다면 100개의 가족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100개 이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지요. 우리가 초등학생 시절 도덕책에서 배운 이상적인 가족은 단언컨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족 간에도 적정 거리가 필요하다

슬프게도 우리가 어렸을 때 배운 이상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격차가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듭니다. 사람이 모이면 누군가는 반드시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이 있고, 상황에 맞춰 따라가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대개 부모나 형, 누나처럼 가족 서열상 상대적으로 위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모든 문제를 자신에 맞춰서 결정하게 되고, 따라가는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부당한 결정을 참아내게 되죠.

일부의 욕구만을 대표하고 누군가가 끊임없이 희생하게 만드는 가족들을 ‘역기능적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서로 의지할 곳이 되어주고, 구성원의 욕구를 골고루 대변하는 등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러한 가족들은 거리 조절을 좀처럼 하지 못합니다.

‘지나치게 밀착된 형태의 역기능적 가족’이란, 한마디로 가족 전체를 한 몸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삶의 방식을 가족에 맞추고, 가족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의 권력관계에 맞춰 해결하고 아무 문제의식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딸의 의견이 다를 때에는 무조건 아버지의 의견을 따르는 그런 방식이지요.

이 정도면 ‘돈독하다’고 믿나요?
조용할 날 없는 가족들을 위한 두 가지 대원칙

이러한 구조에서는 의견을 교환한다거나 서로간의 사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기본 개념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인간이 결코 감정을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역기능적 가족의 아들이나 딸, 동생 등 낮은 서열의 가족들은 끊임없이 감정을 인정받지 못하고 희생만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가족에 대한 병적인 죄책감이 생기게 됩니다. ‘가족의 규칙은 절대적이고 부모는 무조건 옳은데, 내 감정은 불편하네? 이건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야.’ 이런 식으로요. 역기능적 가족의 문제 때문에 고통받는 중이라면 가족 사이에서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대원칙을 말씀드릴게요.

1.  가족관계를 신격화하거나 특별하게 생각하지 마요

이것 또한 인간관계의 일종입니다. 의견이 갈리고, 다투고, 그렇기에 의견교환과 조정이 필요한 하나의 관계입니다.

2.  실망해도 괜찮아요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나고, 그럼으로써 서로에게 실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은 가족간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스스로의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이 역기능적 가족의 희생자라면, 아마 당신은 단 한 번도 가족에 대한 당신의 감정적인 불편함을 인정받지 못했을 겁니다. 역기능적 가족의 고통을 벗어나는 그 첫걸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해 주세요. 당신은 가족이라는 회의에서 여러 가지 의견을 내는 한 명의 대의원이지 거대한 기계에서 한 가지 역할만을 해야 하는 톱니바퀴가 아니에요. 당신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결코 당신의 인성이 잘못되었다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겨우 그것 좀 한 것 가지고 뭘 그리 유세냐’

혹시 이런 말을 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을 한 사람이 잘못된 거예요. 설령 다른 가족들이 당신의 감정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당신만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해야 해요. 가족을 사랑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참아냈던 거예요. 만일 가족들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희생했는데도 마음이 불편했다면 이제는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고, 그것에 대하여 의견을 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랑은 ‘사랑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진가는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의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느냐에 있어요. 사랑할 만한 사람을 골라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거리를 둬야 지킬 수 있다

가족 간에도 거리가 필요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가 없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1과 0이 되어버려요. 가족 간에 거리가 있다는 것은 가족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상대방에게 거리를 둠으로써 상대방이 나에게 완벽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참아내고, 그럼으로써 곁에 있을 수 있어요. 만일, 가족이 존중받아야 할 우리의 어떠한 면을 침해한다면 그때는 거리를 두세요. 가족관계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되기 위해서요. 물론 거리를 벌리면 분명히 상대방은 실망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상대방의 요구를 모두 다 들어주지 않으면 관계가 끊어지는 그런 관계를 우리는 가족 간의 사랑이라고 하지 않아요. 그 실망과 거리는 잘못된 방식의 관계를 개선시켜 줍니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로 최근 치료를 종결하신 환자분이 최근 저에게 보내온 편지의 일부분을 그 환자분의 허락을 받아 공유합니다.

“저는 그동안 어머니께 효도는 했지만 사랑을 하지는 못했어요.
이제 효도는 그만두고 어머니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권순재 정신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일하며, 정신의학신문, EBS <권순재의 마음상담소> 등에 기고 및 연재를 통해 세상사에 지친 이들의 마음챙김을 돕는다.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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