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살날도 지금처럼 불안할까?
20대 갓 주민증이 나온 젊은 청년의 말이 아닙니다. 저에게 찾아오신 올해 만 나이로 40세가 되신 기업 팀장님의 말입니다. 이분은 직장에서는 베테랑일 뿐 아니라 아내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귀여운 딸도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어른이라는 말을 백과사전에서 찾아볼 때 삽화로 들어가 있을 법한 그런 분이었죠.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른인지 모르겠다고. 어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어른, 다 자란 사람, 혹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죠. 의학적으로 우리의 신체는 10대 후반이 되면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신은 어떨까요? 초기 정신의학의 형성기에 프로이트는 ‘정신결정론’을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생의 초기 수년간의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야기이죠. 하지만, 후대 정신의학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중에서 독일 출신 ‘에릭 홈부르거(Erik Homburger)’라는 정신의학자는 인간이 아기부터 성인까지 통과해야 하는 여덟 단계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영아 시기에 인간은 신뢰감의 문제를 겪게 됩니다. 자신이 태어난 이 세상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배웁니다. 2~3세의 유아는 자율성에 대한 도전을 받습니다. 배변 훈련, 스스로 옷 입기 등을 통해 나답게 행동해도 괜찮은가를 배웁니다. 4~6세 때에는 주도성의 문제를, 7~11세에는 근면성의 문제를, 청소년기인 12~20세에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겪습니다.
그리고 성인에 되어서는 자신이 사회와,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의 문제를 겪게 됩니다. 내가 속한 세상에서 나는 ‘사회적인’ 의미로 적응할 수 있는지, 나의 자리는 있는지, 사회는 나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도전이지요. 직업을 가져서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것도 그중 하나이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가족을 완성하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다들 의연해지는데 왜 나만 아닐까
이 성인기,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나의 역할과 자리를 찾고, 나만의 특별한 사람, 혹은 사람들을 만나서 관계를 맺는 것. 아마 이 정도가 우리가 ‘어른’이라고 일컫는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저에게 찾아오신 40대 기업 팀장님은 분명히 홈부르거가 말한 ‘어른’, 즉 사회에서의 내 위치를 확립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조차 여전히 뭔가 완성되지 않은, ‘어른’이 되기에는 뭔가 모자란 느낌을 받고 계십니다. 무엇이 부족하길래 그는 아직도 자신이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느끼는 걸까요?
남은 여정 : 스스로의 부모가 되기
사실 홈부르그가 제시한 성인 인간의 여정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사회에 안착하여 내 자리를 확립한 후 인간은 ‘생산성’에 대한 도전과 마주합니다. 사회에서 적응이 어느 정도 된 후 비로소 무엇이 자기에게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죠. 세상은 10대 때 꿈꿨던 막연한 추상의 세계에서 나 자신의 위치가 정해진 채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감안하고 보는 현실적 실존적 세계가 됩니다. 글의 첫머리에 ‘어른’이 무엇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졌던 그가 마주한 도전이지요. 삶이 유한하고 내 자신이 세상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현실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한정된 자산인 내 삶을 어디에 얼마만큼 분배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직장에서의 커리어에 좀 더 집중하게 됩니다. 아이가 있다면 부모로서 어떠한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남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어떠한 방식으로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합니다. 즉, 어른은 완성이 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싼 이 한정적이고 현실적인 이 세상에서, 이 사회에서 무엇이 될지를 정하는 과정 그 전체를 ‘어른’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래서 그에게 역으로 질문합니다.
“당신 삶의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당신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요? 어른은 자신이 현실적으로 어떤 어른이 될지를 비로소 정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애에 따른 사회성 발달을 확립한 홈부르거는 훗날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합니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에릭 홈부르거는 자신의 성을 스스로 정합니다. 그가 지은 자신의 성은 ‘에릭슨(Erikson)’입니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에릭의 아들인 에릭.
어른, 자신이 자신의 부모가 되어 스스로를 양육하는 시기.
권순재 정신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일하며, 정신의학신문, EBS <권순재의 마음상담소> 등에 기고 및 연재를 통해 세상사에 지친 이들의 마음챙김을 돕는다.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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