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크리트는 쌀과 같이 매우 보편적이다. 기본적인 건축 구조재로 철골, 목재 등도 있지만 실제 사용되는 비율은 콘크리트가 압도적이다. 상당한 고층이 아니면 철골은 잘 쓰지 않고, 목재를 쓰는 비중도 워낙 낮다. 그로 인해 보편적으로 쓰이게 된 콘크리트가 다루기 쉬운 재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형틀을 짜고, 마감 면을 미리 고민하고, 배관을 넣는 일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타설과 양생에 들어갔을 때 품질을 제대로 뽑아내기도 상당히 어렵다.
쌀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쌀농사 위주의 아시아 농경문화가 가진 끈기”의 미덕을 높이 평가할 만큼 쌀 재배는 쉽지 않은 노동이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생산한 쌀을 재료로 해서 제대로 밥을 짓는 것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한식 셰프들이 밥 짓기를 중요한 과제로 꼽는 것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누구나 하는 일을 누구보다 잘해 내기란 정말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콘크리트와 쌀이 이상적인 재료는 아니다. 쌀밥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 자체로는 식사가 되지 못하고 영양 균형도 맞지 않는다. 콘크리트 역시 구조와 마감을 동시에 해결하는 장점이 있지만 이는 양날의 검과 같다. 한반도처럼 겨울과 여름의 온도 차가 심한 지역에서 바깥 공기에 노출된 콘크리트는 건강하기 어렵다. 여름에는 달궈지고 겨울에는 얼어붙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크랙이 발생하고 이것은 철근의 부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콘크리트 건물은 내단열 보다, 외단열과 그 바깥의 마감재로 콘크리트 구조체를 보호해 주는 게 옳다. 사람 몸도 구조체는 안에 있고 그 위에 단열재인 지방층과 마감재인 피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결과는 종종 당혹스럽다. 외장 마감재의 두께에 공기층을 더하고, 거기에 단열재와 콘크리트 자체의 두께, 최종적으로 내부 마감재의 두께까지 더하면 전체 벽 두께가 40cm를 훌쩍 넘어 버린다. 이 정도면 건물이라기보다 요새에 가깝다. 한국의 도시 풍경이 그리 경쾌하지 못한 이유도 그런 건축물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건축가가 디테일에 상당한 집념을 가지고 건물의 시각적 무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예 건물 전체를 유리로 감싸는 방법도 있지만, 빛 반사와 프라이버시 등으로 인해 건물 사이가 인접한 도시에서는 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역에 따라서는 지구단위계획이나 건축 심의에서 이런 통유리 건물을 금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하나의 재료로 외장과 내장, 그리고 구조와 단열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래서 벽을 200mm 정도로 얇고 가볍게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은 건축 이전에 재료 공학의 영역이고 적어도 현재까지는 미 실현된 과제다. 구조재이기 위해서는 높은 인장과 압축강도를 가져야 하고, 단열재이기 위해서는 열전도율이 낮은 다공질 재료여야 한다. 즉, 둘은 모순되는 관계고, 모순을 해결하는 상상이야말로 미래를 꿈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나아가 상상의 재료가 빛을 일부 투과하는 성질까지 있으면 어떨까. 마치 한 공기 쌀밥만으로 균형 잡힌 영양소와 다양한 맛을 모두 구현해 내는 것처럼. 이런 ‘꿈의 콘크리트’는 지금으로는 실현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만, 콘크리트의 장구한 역사적 발전 과정을 생각해 볼 때 오히려 그 잠재력의 최종 목적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황두진 건축가
황두진건축사무소 대표이사로서 현대와 전통을 능숙하게 조화시킨 건축물을 선보인다. <가장 도시적인 삶>, <무지개떡 건축>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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