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in 집] 서점의 비밀스런 쓸모에 대하여

시집서점을 운영한 지 팔 년이 되는 해다. 참으로 아마득한 시간이다. 무모했다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지만 좋아서 시작한 일에는 후회나 미련은 쓸모없는 법이다. 시를 쓰는 게 좋아서 시인이 되고 시를 읽는 게 좋아서 독자가 된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싶어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시 독자들이 모이는 장소. 그들의 지붕. 그들을 위한 조용한 방. 그러니 나를 위한 거처이기도 한 곳. 시를 사랑하는 시인이며 독자여서 나는 이 서점을 사랑한다.

어느 한구석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없으면 없는 만큼, 있으면 동이 날 때까지 쥐어짜 내며 가꾸고 있다. 오전 열 시에 출근하여 밤 아홉 시에 퇴근을 하기까지 이곳에 머무르건만, 관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이곳은 내 인생 최고의 업적이며 자랑일지도 모른다. 나의 서점을 둘러본다. 시집과 각종 소품, 다양한 가구들이 스물세 평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오디오 시스템도, 흘러나오는 음악도 나의 결정이다. 냉장고의 음료도, 커피콩의 종류도 나의 입맛이다. 구획도 배치도 선택과 배제도 나의 의견이다. 그러니 이 작은 서점은 나의 우주요, 세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가 서점 칭찬이라도 해주면 마치 나에 대한 것인 양 뿌듯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이 모든 것을 내가 해놓았다 말할 수 있나 싶다. 우선 시집만 해도 수백 명은 족히 될 시인들의 것 아닌가. 소품은 또 어떻고. 서점에 어울릴 것 같다며 친구들이 건넨 선물이 대부분이다. 가구는 친구인 목수가 몇 날 며칠을 고심하고 공을 들여 만든 것이다. 잔소리 몇 마디 보태고 값을 지불했다고 힘을 보탠 듯 굴어선 안 된다. 다시 한번 서점을 둘러본다. 나의 우주니, 세계이니 하는 감상은 깡그리 사라져 버린다. 이 서점은 이곳을 아끼는 마음들이 거들어 만들어진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일이고 장사라, 사람이 가득 들어차면 좋을 일이나, 서점의 진가는 아무도 없을 때 발휘된다. 초조해지는 것도 잠시뿐이다. 나는 시집들이 내는 깊은 침묵에 귀를 맡긴다. 고요는 실로 거대하다. 현재라는 시간이 미래 쪽으로 움직였다는 느낌을 감각하며, 하릴없이 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창문에 저녁이 드리워지고 깜깜해질 때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제야 나는 실은 내가 누구의 방문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영업이 끝나고 문을 잠그면 조명을 낮춘다. 음악의 볼륨을 높인다. 어둑해진 자리로 돌아와 의자 깊숙이 몸을 묻는다. 맥주나 물을 탄 위스키를 마실 때도 있다. 오롯하게 혼자가 되었다는 감각을 받아들일 때까지 대기한다. 마침내, 모든 것이 완전히 가라앉았다는 생각이 들면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그날 필요한 만큼의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그럴 때 나는 오직 나만을 상대할 수 있다. 모니터 위로 적혀가는 나는 어떤 나여도 좋다.

공간은 목적을 가진 이들이 찾아 들어야 장소가 된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사회를 만들고 뜻을 일구어 문화를 이룬다. 서점도 예외는 아니다. 서점의 의미는 여럿으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어쩌면 내가 팔 년 넘게 이 서점을 붙들고 있는 것은, 그저 개인의 애정이나, 사람들의 관심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이 서점이 필요한 까닭은 나의 ‘혼자’를 담아주고 지켜주는, 사람들은 미처 모르며 서점지기만 아는 비밀스런 쓸모를 가지고 있음에 있다. 그 은밀함이 참으로 시를 닮았구나, 감탄하면서, 이제 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서점을 떠날 때면 나는 어두워진 서점에 인사를 한다. 서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떠난, 소등된 채 식어가는 서점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상상한다. 책상 위에 내버려둔 잔 속 남은 위스키가 말라가고, 시집들은 부피를 키우거나 줄이는 기척을 만든다. 그에 맞게 제 몸을 조정하는 나무 책장의 소리가 있다. 거기 나의 정념이 남아 있으면 어떨까. 정념은 내가 꺼둔 음악을 켜고 창밖의 밤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다. 새벽이 올 때까지. 

유희경 시인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데뷔했으며 시집 『오늘 아침 단어』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겨울밤 토끼 걱정』 등과 산문집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등을 펴냈다.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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