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in 집] 어디 사세요?

‘어디 사세요?’ 이 간단한 질문 앞에 나는 복잡한 표정을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러게요. 어디 살까요?’ 요즘 나는 집이 두 개나 있다. 한 곳은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는 서울이고, 다른 한 곳은 충북의 산골짜기다. 도시와 시골에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긴 양다리를 걸친 채, 어떤 날은 서울이요 어떤 날은 충북이요 라고 대답하고 있다. 이 넓은 대지에 내 땅 하나 없고 이 수많은 집 중에 내 집 하나 없다 푸념하던 이가 어쩌다 이런 상황을 맞이했는고 하니, 작년부터 시작한 이주 프로젝트 때문이다. 나는 삶의 거처를 지방으로 옮겨보는 일을 실험하고 있다.

서른이 되고 질문이 바뀌었다. 이십 대를 뒤흔들었던 ‘어떻게 먹고 살지?’가 ‘어디서 먹고 살지?’로 옮겨갔다. 이십 대 초반에는 서울에서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어디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월세를 낼 수 있는 곳이면 됐다. 사정은 친구들도 비슷했고, 우리는 서울의 울타리를 자처하며 서울 변두리의 저렴한 동네에 포진해 살았다. 사는 곳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돼서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구체화 되었다.

매일 쉬지 않고 달리는 기분으로 살았지만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채찍질해도 한계가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 하나 멈춘 사람이 없었다. 헉헉거리면서도 모두가 다음 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러다 순간 이곳이 아니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다. 내가 빨리 달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빨리 달리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처음으로 내 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닌 나를 둘러싼 환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 것이다. 내가 전속력으로 달린다 해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달리고 있다면 나는 멈춰있다고 느낀다. 반대로 주변이 멈춰있다면 나는 나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모두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도시에서 나는 언제나 멈춰있거나 뒤처지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 숨이 차도록 달리는 동안 나는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자주 놓치고 포기하게 됐다. 무엇보다 한 번이라도 내 고유의 속도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어디 살까?’ 잘 달릴 수 없다면, 적어도 건강하고 즐겁게 완주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으니까. 함께 달리던 친구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죽을 것 같던 친구들이 하나둘 주소지를 바꿨다. 베를린으로, 영국으로, 일본으로, 제주로, 민스크로, 미국으로.

코로나 이후로 집이 될 수 있는 장소는 더욱 넓어졌다. 이주는 전과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먼 곳으로 집을 옮기는 것은 더 이상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코로나를 거치며 전과 다른 소통의 체계가 열렸고,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어디든 연결될 수 있다. 일은 사무실에서만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졌고,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 만큼이나 다양한 정보와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벽은 점점 얇아지고 때로 전복되기도 한다. 앞집에 사는 이웃보다 외국에 사는 친구와 더 많이 연락을 주고받고, 매일 보는 직장 동료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셀러브리티와 친밀감을 느낀다. 한국에 있다는 것은 더 이상 ‘한국에 있다’는 것과 완전히 결부되지 않는 것이다. 전과는 다른 맥락으로 환경을 선택해 볼 가능성이 열렸다. 전화해서 당장 밥 먹자고 부를 수 있는 친구는 줄었지만, 각자의 상을 차려 온라인 겸상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캐리어 하나와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충북으로 하향한 것은 작년 이맘쯤이다. 엄마와 친구들이 모여사는 시골 마을에 셋방을 든 것이다. 어느덧 나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이제 내 주변에는 아주 많은 거미와 나비가 있다. 요즘 같은 봄에는 밤마다 개구리 울음소리로 K-POP 공연장 뺨치게 시끄러운 콘서트가 열린다.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볕을 쬐며, 시골에서 사는 일이 내 상상과 어떤 면에서 다르고 맞는지 발견한다. 새로운 풍경 안에서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살펴본다. 월화수목은 그 소리를 듣고, 금토일은 서울의 매연을 마시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풍경에 맞춰 걷고 싶냐고.

양다솔 작가

 

수필집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출간하며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해 <아무튼, 친구> <절멸>(공저), 최근엔 <적당한 실례>를 썼다. 메일링 프로젝트 ‘격일간 다솔’을 발행하고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를 만들며, ‘시티드 코미디쇼’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크리에이터이자 프로 N잡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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