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에서, 마음을 다시 배우다

한 해의 마지막에 서면, 누구나 한 번쯤 묻게 된다. “올해 나는 잘 살았을까? 내 마음은 괜찮았을까?” 명쾌한 해답을 바라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하지만 심리학자 최승원 교수는 그 기대에 곧장 답을 주기보다는, “심리학은 정답을 들려주는 학문이 아니라, 의심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차분히 말한다.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치유 콘텐츠, 단편적인 실험 하나로 사람을 재단하는 대중 심리학, ‘심리학적 근거’라는 이름으로 오해와 압박을 더하는 수많은 조언들. 이런 흐름 속에서 그는 “그건 틀린 이야기”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드문 학자다. 

그는 말한다. 인간은 완벽하지도, 쉽게 이해되는 존재도 아니라고. 중요한 건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다시 나를 바라보는 일이라고. 연말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위로이자 다짐은,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Q. 벌써 2025년 마지막 한 달을 앞두고 있어요. 올해 심리학계에서 가장 주목했던 키워드나 트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학계에서 바라보는 올해의 키워드는 AI 상담이에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AI에게서 큰 위안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심지어 친구나 가족 같은 감정적 연결을 느끼는 분들도 있었죠. 하지만 AI는 결국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지치지도 않고 해주는 존재입니다. 감정이 상할 일도 없고요. ‘역대급 간신배’가 등장한거죠. 상담에서는 때로는 불편한 얘기를 나눠야 하고, 갈등을 겪는 과정이 필요해요. 인간은 좌절을 통해 도덕성도 배우고, 사회성도 배우기 때문인데, 모든 말을 맞춰주는 존재만 곁에 두면 그런 능력들이 약해질 수밖에 없죠. 

한편, 뇌과학 트렌드도 역시 과하게 단순화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현재 기술로 뇌를 아는 수준은 특정 행동을 할 때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를 파악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마치 인간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콘텐츠가 많아졌어요. 이러한 과도한 단순화는 결국 인간을 ‘너무 쉽게 판단하게 만드는 문제’를 낳습니다.   

심리학이란 학문은 인간은 완벽하지도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며, 자주 틀리고 고집도 센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누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단정짓지 말고,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죠.  

Q. 이런 심리적 접근을 가장 많이 하는 시기가 연말인 것 같아요. 한 해를 돌아보면서 좋은 일보다 아쉬움이나 후회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가 짧아지고 날씨가 추워지면 신체 리듬이 자연스럽게 ‘정리 모드’로 들어가고, 마음도 ‘돌아보기 모드’로 전환. 이때 후회할 일이 더 많이 떠오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잘한 일보다 실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에요. 생존에 중요했던 건 ‘결정적 실수를 줄이는 것’이었고, 그래서 실수는 오래 기억되고 빠르게 떠오릅니다. 잘한 일은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 뿐이지만, 실수는 생존 자체를 위협했으니까요. 그러니 연말이 되면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인간의 기본 설정과도 같은 거죠. 

Q. 이러한 자기 점검을 회복과 성장의 기회로 만들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자기를 돌아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요. 반성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특정 상황에서 실수한 건데, 그걸 바로 “나는 이런 일에 원래 안 맞아” “역시 난 부족한 사람이지” 이렇게 일반화해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도전의 의지가 꺾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반성은 구체적으로 하세요”라고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못 했는지’ 떠올리고,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건 발전의 동력이 됩니다. 그런데 그 “나는 원래 안 돼”라는 결론으로 몰고 가면 그건 반성이 아니라 그냥 자책이에요. 생산성도 없고요. 

Q. 가끔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를 때가 많아요. 일상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파악하려면 어떤 방법이 효과적일까요?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어깨가 굳고, 이를 악물고, 손이 떨리고, 평소보다 땀이 많이 난다든가—이런 신체 신호들이 먼저 나타나요. 본인은 “나 하나도 안 힘들어”라고 해도, 몸은 이미 다른 상태에 들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생각을 정리하려 애쓰기보다 “몸이 먼저 보내는 신호”에 주목하라고 말씀드립니다.  

몸이 경직돼 있으면 잠깐 일을 멈추고 걸어 나오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마사지처럼 신체 긴장을 풀어주는 활동을 하세요. 생각과 감정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Q. 다루기 힘든 감정들이 찾아올 때가 있잖아요. 분노나 무력감, 자기비난 같은 부정적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이 올라올 때 가장 먼저 ‘부정’합니다. “난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하면서요. 그런데 감정은 담아두는 것과 말로 꺼내는 게 완전히 달라요. 롤러코스터도 눈 감고 입 다물면 더 무섭고, 눈 뜨고 소리 지르면 덜 무섭잖아요. 감정도 그렇습니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감정의 무게가 줄어듭니다.  

다만 감정을 말할 때 과장해서 표현하면 오히려 그 감정을 확대해서 믿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신체 상태를 기준으로 표현해보라”고 권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짜증나서 못 견디겠어”라고 말하기보다 “어깨가 갑자기 확 굳네”, “속이 답답해지네”처럼요. 이렇게 말하면 감정을 정확한 크기로 파악할 수 있고, 특정 상황에서 나타난 신호일 뿐인데도 자기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스스로 먼저 이해하는 과정이죠. 




“새해 목표는 성과 중심보다는 행동 목표나 감정 목표를 함께 세우라고 말씀드립니다. 한 달에 한 번 즐거운 체험을 한다 같은 행동 목표는 심리적 성취감을 주고 실패해도 타격이 적습니다.”

Q. 바쁜 일상에서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짧은 자기성찰 루틴을 추천해주신다면?

요즘 세대분들께는 조금 어려운 부탁이긴 한데요, 저는 핸드폰 없이 잠깐 나가는 것을 정말 추천드려요. 회사 앞을 3분만 돌아도 되고, 커피를 사러 나가도 됩니다. 중요한 건 핸드폰을 두고 나가는 것이에요. 스마트폰은 우리가 느끼는 혼잡함보다 훨씬 빠르고 복잡한 정보를 끊임없이 밀어 넣습니다. 그런데 정작 바깥 세상은 그렇게 빠르지 않거든요. 사람들 걷는 속도, 카페에서 커피 내리는 소리, 창밖 풍경 같은 것들을 그냥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명상이나 웰니스 루틴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장비를 구매 한다거나 어딘가를 가야 한다거나 하는 방식은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유지 가능한 루틴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Q. 교수님께서는 인권센터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고충을 접하시고 계신데요. KCC처럼 큰 조직에 속한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대표적 심리적 스트레스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공통적으로 이들이 느끼는 큰 스트레스는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감각입니다. 보고서 하나를 써도 “이게 잘한 건지 아닌지” 내가 판단할 수 없고, 모든 결정이 나의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구조. 이게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체력이 다른 게 아니라, 통제감의 차이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세계를 하나 만들어라” 라고 조언합니다. 취미든 운동이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게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최승원 교수가 KCC구성원들에게 취미나 운동처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조언하고 있다.

Q. 다가올 새해엔 다들 저마다의 목표를 세우잖아요. KCC 구성원들이 새해 목표를 잘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이나 방법을 조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성과 위주의 목표를 세우는데, 성과를 중심으로 세운 목표는 실패 확률이 높습니다. 성과는 내 노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행동 목표나 감정 목표를 함께 세우라고 말씀드립니다. 가령 ‘한 달에 한 번 즐거운 체험을 한다’, ‘한 주에 한 번 몸을 움직인다’와 같은 ‘경험’ 위주의 목표는 성공하면 심리적 성취감을 주고, 실패해도 타격이 적습니다. 우선 시작할 땐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서 그것을 이루면, 또 그 다음 단계의 목표를 세우는 거죠. 목표는 늘 중간 점검을 통해 레벨업을 한다고 마음을 먹어야 해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좀 더 단단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도록, 심리학자로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늘 역으로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잘 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 누굴까?” 한번 곰곰 생각해보세요. 나라는 소중한 존재의 완벽한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습니다. 내 삶에 대한 책임도 결국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저는 “나는 나를 응원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고 나를 돌봐야 한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어요. 마음에 해답은 없어요. 하지만 나의 행복을 가장 바라는 주체가 나라는 것.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보세요. 밖은 소란해도 내면은 고요한, 더욱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할 겁니다. 

덕성여대 심리학과 최승원 교수   

 

*경력

의심 많은 심리학자를 자처하는 심리학과 교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 전문가로 일했고,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강의와 연구를 진행 중이다. 양극성장애와 심리생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저서로 <그건 심리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만>,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한 밤의 심리학(공저)> 등이 있다. 

댓글 26개

  1. jde*** 2026.01.14

    폰 없이 생활해 봐야 겟습니다.

  2. jku*** 2026.01.06

    25년 건강하자!

  3. shi*** 2026.01.06

    2025년 우리가족 화이팅

  4. ysc*** 2026.01.06

    2025년을 보내는 나의 마음은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다!

  5. jkh*** 2026.01.05

    25년을 보내는 나의 마음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내년에도 무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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