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창조한 재료 중 유리만큼 신비로운 것이 또 있을까? 물이나 공기처럼 투명한 이 인공의 재료는 사실상 액체에 가깝다. 유리는 고체와 다르게 비결정질 상태의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가 냉각 과정에서 결정질 상태로 확산하지 않아 ‘과냉각 액체’라 불리는데, 그래서인지 ‘유리는 흐른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아직도 액체인지 고체인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이 신비한 재료는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세상과 연결하는 ‘창’ 역할을 해왔다. 건축물에 설치돼 태양빛을 들이고, 밖과 시각적 연결을 이루는 실체적 창부터 화면이라는 매체를 통해 가상 세상과 연결되는 창까지.
서울이 급속도로 팽창할 무렵, 건축물에 설치되는 창은 ‘샷시’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기 시작했다. 영어로 sash, 일본어로는 サッシ(삿시)라 불리던 것이 한국으로 오며 샷시라 불리게 되었다. 보통 창(window)은 창틀(frame)과 창짝(sash), 유리(glass)로 구성된다. 그런데 왜 창을 window라 하지 않고 창을 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인 sash라 부르게 된 것일까?
창을 샷시라 부르게 된 유래를 찾긴 어렵다. 다만 동, 서양의 구축 방법에 따른 창의 형태나 쓰임의 차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서양(특히 유럽)에서는 건축물을 구축할 때 주로 돌을 사용해 왔다. 기후가 건조해 땅이 단단했고, 나무보다 돌을 구하기 쉬운 환경적 조건이 만든 결과다. 돌은 인장력에 취약해 넓게 개구부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창의 크기는 작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창의 형태는 좁고 세로로 길었으며, 환기를 위해서 오르내리창이 설치되었다. 이 오르내리창이 영어로 sash window이다. 두 개의 창짝이 위, 아래로 슬라이딩 되어 개폐되는 방식의 sash window를 90도 회전하면, 우리가 샷시라 부르는 미닫이창의 형태가 된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비가 많이 오고 습하다. 그렇기에 벼농사가 주가 되었고, 나무가 풍부했다. 땅이 물러 돌처럼 무거운 재료를 쌓는 방식이 아닌 나무로 기둥을 세워 집의 뼈대를 만들고 벽은 흙으로, 채광이나 환기 그리고 출입이 필요한 곳엔 창문을 설치했다. 목재로 뼈대를 만드니 뼈대를 제외한 부분에 창을 넓게 설치할 수 있었고 이는 사람이 드나드는 창의 기능에 부합했다. 서양에선 문과 창의 구분이 명확하지만, 우리의 전통 건축에서 창과 문의 구분이 모호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창을 창이라 하지 않고 창문이라 지칭한다.
창이 넓어도 우리의 전통 건축에서는 부담이 없었다. 담이라는 장치가 있었고 유리를 대신하는 창호지가 있어 사생활 보호에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과 창의 기능을 함께하고 밖으로 나서면 툇마루나 대청마루로 이어지니, 개폐 방식은 여닫이보다 미닫이가 유리했다. 이렇듯 한국이나 일본의 창은 창틀(frame)보다는 열고 닫는 창짝(sash)의 기능이 더 중요했다. 열고 닫음의 방식이 미닫이이다 보니 sash window의 sash가 중요한 창의 요소가 됐고 창을 지칭하는 명칭이 sash가 된 것이 아닌가 추론한 것이 내 추측의 근거다.
KCC글라스 ‘홈씨씨 윈도우 5i (HomeCC WINDOW 5i)’
전통 건축에서 근, 현대로 넘어오면서 유지되고 있는 건축 요소가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온돌이고 또 하나가 창문이다. 생활방식이나 도시의 구조가 바뀌었음에도 창문은 여전히 샷시의 형태를 하고 있다. 아파트가 그렇고 다가구, 다세대주택인 빌라가 그렇다. 툇마루나 대청마루는 사라지고, 곧장 외부로 연결되는 환경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로 인해 난간이 설치되고 안에는 커튼이 필수가 되었다. 창은 건축물의 디자인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고 내부 인테리어적인 부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담당한다. 무조건 빛을 많이 받고 외부를 보겠다는 의지를 담아 습관적으로 설치하는 샷시는 실제 사용의 측면에서 충분히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샷시가 아닌 창을 디자인하고 설치할 때이다. 빛의 다양한 질감을 이해하고 건축물의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절실히 깨달으며, 샷시를 벗어나 좋은 환경과 디자인에 도움이 되는 창을 설치할 때 말이다.
샷시는 이제 그만, 난간도 이제 그만, 난간에 매단 실외기도 이젠 그만. 적층된 도시 주거에서 이제는 샷시가 아닌 도시 환경에 적정한 창호를 디자인하고 구현할 때이다.
조병규 건축가
투갓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건축사로서 건축 에세이 <보통의 건축가> 집필과 SBS 프로그램 ‘좋은아침 하우스’ MC등 도서와 방송을 오가며 대중들에게 건축 정보를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