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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8

[KCC NOW] 순수한 나의 소리를 찾아서, 오디오 뮤지엄 <오디움>

선선한 바람에 나부끼는 잎새 소리와 그 사이 어딘가에 붙어 있을 매미 소리. 그 밑으로 흐르는 강물 찰랑 소리와 그곳에서 건져 올린 시원한 수박을 쩍 하고 가르는 소리. 그리고 왜 이렇게 흘리냐며 휴지를 벅벅 뽑던 엄마의 잔소리까지. ‘어린 시절 여름’ 하면 떠오르는 소리가 여전히 생생해서, 제법 어른스러워진 얼굴에 쨍쨍한 미소가 비친다. 하지만 요즘 여름 소리는 그 시절보다는 많은 게 복잡해지고 부자연스러워졌다. 에어컨 실외기 소리와 대뜸 들려오는 짜증 섞인 자동차 경적 소리. 이웃은 인사 대신 층간 소음으로 갈등을 주고받고, 휴대폰 소리에 얼굴을 파묻은 사람들은 고요 속에서 기억 되지 않을 몇 초 자리 영상을 보며 혼자 웃는다. 엄마의 잔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만, 이젠 정말 그때의 소리는 사라진 걸까? 너무나도 순수해서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그런 좋은 소리 말이다.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가 디자인한 ‘오디움’외관.

서울에 오디오 뮤지엄, ‘오디움’이 문을 열었다. 지상 5층, 지하 2층.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가 디자인한 국내 최초 건축물로, 외관에 수직으로 둘러싸인 알루미늄 파이프 2만 개가 신비하고 몽환적인 무드를 만들며 숲과 도시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소리’라는 추상이 만들어온 150년 역사가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전시돼 있다.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유성기부터 현재까지 오디오가 발전해 온 진보의 과정이 수집·연구되어 섹션 별로 정리돼 가지런히 놓여있기 때문이다. KCC 창업주 고(故) 정상영 명예회장의 유산과 정몽진 회장이 출연한 사재를 통해 만들어진 오디움에선 과거부터 쌓아온 소리의 기록을 직접 감상하며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한 무한한 탐험이 가능한 것이다.

<웨스턴 일렉트릭>社 스피커, 총 8개의 혼(Horn)과 중앙의 우퍼로 구성되어 소리의 울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웨스턴 일렉트릭> 社 스피커로 영화 상영을 위한 극장 환경에 맞게 거대한 혼(Horn)을 구부려 축소시켜 오히려 현대 미술과 같은 수려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에디슨이 발명했던 다양한 축음기부터 유성 영화가 태동하던 시기에 영화 산업과 함께 발전한 음향 기기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당의 선전 목적으로 발전한 음향기기까지. 당시 음향시스템의 양대 산맥이던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과 독일 <클랑필름>의 다양한 오리지널 빈티지 오디오를 실제로 만나볼 수 있다. 역사의 역동성과 함께 움직여온 그들의 음향기기들은 거대하고 투박하지만, 그만큼 대중을 압도하는 미학적 성취가 있었고, 오디움에선 그 압도감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에디슨의 축음기

독일 <클랑필름> 社 스피커들

이후 기술 발전으로 가정집에도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축소된 음향 기기들과 LP의 발전사 등도 오리지널 그대로의 모습과 음향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렇게 숨죽인 채 그때의 소리를 감상하다 보면 순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 본연의 소스를 그대로 출력하기 때문일까. 분명 녹음된 음악일 텐데, 어떤 악기들로 연주되는지 그리고 그 악기들이 무대 위 어디에서 연주되고 있는지 까지 생동감 있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소리가 탄생해서 우리에게 닿는, 그 모든 순간에 어떠한 얼룩도 묻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로서의 음향인 것이다.

고급 가구의 형태로 가정에도 설치되기 시작한 첫 스피커들의 모습

LP에 홈을 파서 음향을 만들어 내는 초창기 턴테이블의 모습

오디움을 감상하다 문득, 세상의 소리는 그대로인데 그 소리를 담아내는 우리가 변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릴 적 순수했던 그 시절 여름 소리가 그토록 오래도록 아름답게 마음에 남은 이유도 수많은 소리 중에서 그 소리를 찾아내고, 유난히 귀 기울였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좋은 소리는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더 자극적인 소리만 찾아 헤매기 시작하면서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일 뿐.

수많은 LP음반이 전시되어 있는 지하 2층 라운지

오디움에서 다시금,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 좋은 소리를 찾는 여정에 올라보면 어떨까. 도시의 소음에서 한걸음 물러서,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자신만의 소중한 소리를 찾아서 말이다. 뮤지엄은 매주 목∼토요일 사흘간 10시부터 17시까지 문을 열고(일~수요일 휴무),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해야만 입장 가능하다.

공식 홈페이지

https://www.audeum.org/home

위치. 서울시 서초구 헌릉로8길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