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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경제, 방향을 지키는 것이 해답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김광석 경제연구실장

3 17일, OECD가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 제목은 ‘Steering through uncertainty(불확실성 속을 운전하고 있다)’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 경제·정치·산업 환경의 급변 속에서 기업은 리스크를 감내하며 전진해야 한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김광석 경제연구실장은 유연한 피벗이해답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Q. 실장님께서는 최근 저서에서 ‘피벗’의 시대를 강조하셨습니다. 피벗이란 무엇이며, 지금 왜 중요한가요?

피벗(Pivot)은 기존 전략의 방향을 전환하거나 수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회피가 아니라, 생존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전략적 방향 전환이죠. 지금은 4고(高) 즉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고비용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한두 가지 변수만 변화해도 대응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네 가지 모두가 동시에 기업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유연하게 전략을 조정하고, 필요한 순간에 기민하게 방향을 바꾸는 ‘피벗’ 능력이 중요합니다. 피벗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 생존하고 기회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Q.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저성장 고착화’ 대한 우려도 있으신데요. 지금의 한국 경제는 ‘저성장 고착화’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경제성장률이 구조적으로 2% 이하로 낮아진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를 ‘경제 위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경제학적으로 위기란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거나 실물경제가 급격히 붕괴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구조적 저성장이 문제이긴 하지만 위기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체감 경기의 악화로 인해 위기로 인식하고 있죠. 이런 때일수록 ‘경제 위기’라는 용어 사용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불안 심리를 부추기기보다 냉철한 진단과 구조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광석 교수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요즘, 생존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피벗’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Q. 트럼프 2.0 시대는 단지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현실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흐름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맞습니다. 이른바 ‘트럼프 2.0’이라 불리는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이미 글로벌 경제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단지 특정 정권의 문제가 아닙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시작된 ‘미국 우선 주의’는 이제 미국 정치 전반의 공통된 흐름이 되었고, 미국 내에서도 초당적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세 가지 방향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첫째,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의 회복을 위한 자국 중심 정책. 둘째,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통해 기술과 공급망을 분리하려는 움직임. 셋째,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통해 미국 중심의 가치사슬을 구축하려는 전략입니다. 이처럼 미국은 정치·경제 전방위에서 자국 중심의 공급망과 기술 독립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무역 장벽이 아니라 ‘공급망 안보’ 차원에서 접근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같은 수출 중심 국가에 이런 정책은 큰 도전입니다. 특히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모빌리티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는 미국 현지 생산 요구, 부품 현지조달 조건 등 까다로운 규제와 요건이 동반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은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미국의 산업정책 변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보다 정교한 대응 전략이 요구됩니다.  

예를 들어, 미국 현지에 생산 거점을 둔다든가, R&D와 공급망을 현지화하거나, 동맹국 간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국내 기업들도 미국 내 생산기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생존 전략을 짜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고 있고, 삼성전자도 텍사스 테일러시에 반도체 파운더리 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KCC와 같은 소재·부품 기업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실리콘 코팅재 같은 부품 소재가 현지에서 요구되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기술 표준을 맞추고,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경쟁력 확보의 핵심입니다. ‘트럼프 2.0’은 특정 인물의 정치적 귀환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기술은 최고의 무역 협상 카드입니다. KCC를 포함한 우리 기업들은 가격경쟁력 뿐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보유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해야합니다.”

Q. 이런 글로벌 환경에서 한국 기업들은 어떤 대비가 필요할까요? 특히 KCC와 같은 기업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까요?

글로벌 경제는 점점 ‘지역화(Regionalization)’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IRA, 중국은 중국제조 2025, 유럽은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 기업은 ‘생산기지 다변화’, ‘공급망 리스크 관리’, ‘기술 자립화’ 적극 추진해야 합니다. KCC와 같은 소재·부품·장비 기업은 특히 기술력 확보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공급 구조, 다양한 거래선 확보, 생산·조달·유통의 복수화 전략 등이 요구됩니다.  

Q.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KCC를 포함한 기업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지금은 공급망을 단일 국가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미중 갈등, 지정학적 리스크, 자원 민족주의 등 복합적 변수들이 작동하면서 기업은 다변화된 공급 전략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KCC와 같은 글로벌 제조 기업은 생산 거점, 조달선, 물류망까지 다층적으로 분산된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지역이 바로 ‘알타시아(Altasia)’입니다. 알타시아는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신흥 아시아 제조 국가들을 의미합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이 지역을 대체 생산지이자 미래 소비시장으로 주목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도 알타시아와의 전략적 연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생산 기지 확보, 현지화된 R&D,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 알타시아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알타시아는 Alternative(대안, 대체)와 Asia를 조합해 만든 신조어로 중국을 대신할 공급망 생태계를 뜻한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대만, 방글라데시, 인도, 미얀마를 제외한 아세안 9개국 등 14개 국가를 말한다.

Q. “관세를 이기는 것은 기술력이다”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트럼프 정부는 고율의 관세를 무기로 활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관세를 부과해도, 그 기술이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핵심 기술이라면 결국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게 바로 제가 말 한 ‘관세를 이기는 것은 기술력’입니다. 기술은 최고의 무역 협상 카드입니다. KCC를 포함한 우리 기업들은 가격경쟁력뿐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보유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해야 합니다. 특히 핵심 소재나 공정 기술은 보호무역의 벽을 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KCC구성원들에게 KCC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직접 설명하는 김광석 교수.

Q. 다시 피벗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OECD 보고서에서 말한 “Steering through uncertainty”와도 연결되는 개념일까요?

그렇습니다. 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금의 경제 상황을 “Steering through uncertainty”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 개념이 피벗과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상황에 따라 전략을 유연하게 전환하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리더십입니다. 정답은 없지만, 방향감각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Q. KCC 같은 기업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변화는 무엇인가요?

먼저 밸류체인 전반에 변화가 큽니다. 미중 갈등, 신흥국 부상, 에너지 전환 등으로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불확실성의 일상화입니다. 지정학적 리스크, 에너지 가격, 환율 등의 급변으로 예측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세 번째는 원자재 수급의 구조적 문제입니다. 자원 민족주의가 강해지면서, 특정 자원의 수출 제한이나 가격 급등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KCC와 같은 기업은 이런 변수들을 시스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단기적 대응을 넘어, 구조적이고 선제적인 접근이 요구됩니다.  

Q. 마지막으로 KCC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KCC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로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Steering through uncertainty의 시대에 있습니다.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헤쳐 나가는 전략은 만들 수 있습니다. KCC가 기술력과 전략적 유연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가길 기대합니다.기민한 피벗과 흔들리지 않는 방향감각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김광석 경제연구실장

 

*경력

교수, 연구원, 작가, 칼럼니스트, 대중 강연자, 경제 평론가 등으로 일하는 이코노미스트.

삼정 KPM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한양대학교 겸임교수로 있다.

경제 읽어 주는 남자 TV’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AI가 인간에게 묻다>, <긴축의 시대> 등을 비롯해 해마다 경제 전망 서적을 내고 있다.

댓글 6개

  1. yan*** 2025.04.03

    2025년도 이미 2분기가 시작되었는데,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아가야 하는게 개인으로서나 기업으로서 적지않은 부담이 되는 현실입니다. KCC의 경쟁력 있는 "기술력" 만이 이 상황을 헤쳐나갈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게되었네요. 누구든 찾게 되는 "최고의 제품"만이 살아 남을수 있다...

  2. iro*** 2025.04.02

    저성장 고착화, 불확실성, 4고 시대 등 불안한 단어들이 한 개인부터 국가까지 잠식하고 있는거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3. lar*** 2025.04.01

    피벗의 시대, 방향감각을 잃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농구 경기처럼 피벗 플레이를 통해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4. ulo*** 2025.04.01

    예전에는 나라라는 안정적인 거대한 항구에서 주변만 오가면 되는 안정적인 저물가 시대에서 4고(高/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고비용) 시대로 전환되어 개인부터도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다고 생각합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돌파구는 기술력이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업무나 개인 생활에도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좋은 내용 읽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5. mgy*** 2025.04.01

    평소에도 좋아하던 김광석 실장님께서 웹진에 글을 쓰다니, 너무너무 반갑네요!!! 실장님의 시각으로 KCC 우리회사의 방향성을 짚어주는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회사원으로 우리회사를 위해 기술력있는 제품을 개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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