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성수동의 한 복합문화공간, 길게 늘어선 줄의 끝에는 굿즈 매장이 아닌 ‘시 큐레이션’ 서점이 있다. 20대 대학생 A씨는 오늘 구입한 시집 뒷면에 문장 도장을 받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선다.
#장면 2: 인스타그램 화면 속, 빛바랜 종이 위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 쓴 시 구절이 피드를 채운다. 게시물 하단에는 #Poetcore, #필사스타그램이라는 해시태그가 선명하다.
바야흐로 ‘포엣코어(Poet-core)’의 시대다. 읽는 행위 자체를 ‘멋’으로 여기던 ‘텍스트힙(Text Hip)’ 열풍이 한 발 더 나아가, 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1분 내외의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 행과 연 사이에 숨겨진 은유를 곱씹는 ‘느린 언어’가 젠지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숏폼의 세대를 사로잡은 감각적인 언어
‘포엣코어’ 현상은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예스24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 기준 10~20대 독자의 시집 구매량은 2024년도 대비 51.9% 증가했으며, 특히 10대 독자의 시집 구매량은 무려 97.2% 급증했다.
이들이 시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들이 책을 읽는 이유로 ‘학업’(29.4%)이 가장 높았지만, ‘독서 자체가 재미있어서’(27.3%), ‘자기 계발’(13.9%) 등이 뒤를 이었다. 10대들이 독서라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과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시의 결정적인 인기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에게 익숙한 숏폼 문법과 닮아있다는 점에 있다. 짧고 압축적인 시의 문체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호흡과 완벽하게 맞닿으며 문학의 문턱을 낮췄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소박한 위로의 문체로 약 10년째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판매량이 67배 폭증하며 시집 시장의 외연을 획기적으로 넓혔다 . 여기에 차정은의 ‘토마토 컵라면’, 고선경의 ‘샤워젤과 소다수 등 감각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상위권에 포진하며 흐름을 잇고 있다. 이들은 일상적인 소재를 활용해 마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듯 시를 시각화하며 1020세대의 호응을 끌어냈다.
‘체험’과 ‘구독’으로 일상이 된 시
시는 이제 종이 위를 떠나 다양한 형태로 소비된다. 젊은 층은 시 전문 서점을 찾아 시인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낭독회에 열광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년필로 정성껏 옮겨 적는 ‘필사 챌린지’를 하나의 놀이 문화로 정착시켰다. 시 구절이 적힌 유리컵이나 책갈피 등 텍스트를 입힌 디자인 굿즈 역시 자신의 취향을 증명하는 도구로 인기를 끈다.
매일 아침 시를 배달받는 플랫폼의 성장도 눈에 띈다. 문학동네의 뉴스레터 ‘우리는 시를 사랑해’, 창비의 시 큐레이션 앱 ‘시요일’ 등이 대표적이다. 시는 이제 특별한 결심이 필요한 문학이 아니라,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처럼 일상의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나 다움’을 표현하는 세련된 장치
시가 일상이 된 세상이 보여주는 풍경은 결국 ‘나다움’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과 맞닿아 있다. 시를 읽는 행위가 하나의 힙한 트렌드가 된 지금, 문학은 이제 지루한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증명하는 가장 세련된 장치가 되었다. 이러한 서정적 소비 트렌드가 앞으로 우리의 일상을 어떤 색채로 덧칠해 나갈지 궁금해진다.
[기사 요약]
- 텍스트힙’ 열풍이 시집과 필사 문화로 확장되며 ‘포엣코어’가 10~20대의 새로운 취향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2025년 10~20대 시집 구매량은 전년 대비 51.9% 증가했고, 특히 10대는 97.2% 급증했다.
- 짧고 압축적인 시의 문체가 숏폼에 익숙한 세대의 감각과 맞물리며 문학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다.
- 포엣코어는 문학을 학습이 아닌 ‘나 다움’을 표현하는 세련된 취향의 장치로 바꾸고 있다.

댓글 1개
가정과 일에 몰두하느라 관심이 없었던 항목인데.. 한번 챙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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