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Tech] 기업 경쟁력이 곧 ‘국가의 힘’이다

“무자비한(ruthless) 플레이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지난 4월 10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에서 3골을 몰아치는 활약으로 팀 승리를 이끈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를 두고 영국 매체가 표현한 말이다. 손흥민은 이날 3골로 시즌 17호 골을 작성하면서 선두인 무함마드 살라흐에게 3골 차로 따라붙었다. 필드골만 놓고 보면, 살라흐의 15골보다 많다. 손흥민은 한 명의 축구선수에 불과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의 품격을 만방에 드높인 홍보대사임에 틀림없다.

작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움직이게 만든 촉매 역할은 한국 대기업들이 맡아 수행했다. 미국이 추진하는 핵심 산업의 공급망(밸류체인) 구축에 동참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 기업들은 44조 원 규모의 통 큰 대미(對美) 투자로 전기차, 반도체 시장에서 확실한 성장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미국의 전기차 산업은 바이든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으로 향후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된다. 이참에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의 GM, 포드 등 완성차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하며 배터리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뒤처진 파운드리 투자에 적극 나선 것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크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탑재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자율주행차 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두고 미중(美中) 패권경쟁이 심상치 않다. 말이 경쟁이지 사실상 총성 없는 전쟁터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여온 한국은, 작년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反中) 전선에 동참한 모양새다. 우리 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이른바 ‘BBC(바이오, 배터리, 반도체) 산업’에서 공동전선을 구축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BBC 공급망을 결속하고 6G, AI, 수소에너지 등 첨단기술 동맹을 강화한 것은 중국 저지선을 공동으로 구축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따라 이뤄졌다. 쿼드(QUAD) 참여국인 미국과 호주, 일본, 인도를 지도에서 연결하면 남중국해를 지나는 선이 그려진다. 앞으론 경제와 안보가 한데 묶이는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다.

향후 우리 제조업의 탈(脫)중국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려면 주요 대기업을 제외한 다른 기업들의 생태계가 과연 이런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먼저, 한국 BBC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공급망이다. 이미 우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국제 분업에서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봤다. 배터리에선 중국이 쥐고 있는 희토류 등 소재 공급망이 중요한데, 이는 여전히 기업의 숙제로 남아 있다. 바이오에선 기술이전 협력 구도가 뚜렷하지 않다. 또 하나는 중국 경제에 묶여있는 상당수 국내 기업의 생명줄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요즘은 ‘기업과 국가가 하나’ 되어야 힘을 발휘하는 공동운명체 시대다. 새로운 환경변화 속에서 기업 경쟁력이 바로 ‘국가의 힘’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떠올랐다. 한미 양국 관계는 안보를 넘어 경제동맹으로 가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 또한, 급변하는 국제 정세로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기후변화와 소득 격차, 인구 감소 등 우리가 직면한 문제해결을 위해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정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번에 우리 대기업이 확실히 정부에 힘을 보탰다면, 다음엔 정부가 기업에 힘을 실어줄 차례다. 무슨 큰 특혜를 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기업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주면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면 된다.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

그간의 경제정책에 대한 냉정한 자기성찰도 필요하다. 코로나19 창궐 이전에도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한국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또한,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대책은 집값과 전셋값을 동반 상승시키며 많은 젊은이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겼다. 단지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코로나19 와중에도 기업 활동을 철저히 묶는 다양한 입법들을 양산해 기업 부담을 가중시켰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처한 어려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대다수의 중소기업 CEO는 “정부가 기업 하는 사람들을 너무 몰아쳐 정말 사업하기 힘들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들의 하소연에는 절박함이 묻어있다. 특히 올해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을 가장 힘든 규제 중 하나로 꼽았다.
지금 변화와 기회의 시대를 맞아 전 세계가 총칼 없는 전쟁터다. 이런 상황에선 개별기업의 대응은 한계가 있고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경제정책의 방향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 그 출발점은 정부 주도가 아닌 기업이 맘껏 뛰게 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의 중심인 기업을 중심으로 고용 시장을 선제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결국 경기 변동 요인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자.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산업계가 윈윈할 수 있는 새로운 파트너십을 만들 때다. 언제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위원

1986년 한국화학연구원에 입소한 이래 36년째 한 길을 걷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화학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울산대학교 화학공학부 겸임교수를 비롯해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4차산업혁명 U포럼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산, 울산, 여수 등 우리나라 3대 석유화학단지의 발전로드맵을 모두 총괄했으며 지난 2018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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