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쪽 상담소] “나 잘살고 있는 걸까?” 남과의 비교로 불안해질 때

“잘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분 정도, 막연한 불안감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잘 살고 있는지 몰라서 불안하다는 분들이지요. 초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였을 때에는 무척 난감했습니다. ‘애초에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정신적인 것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일까?’ 혹은 ‘그것을 왜 남에게서 확인하는 것이며 남이 확인해 준다고 한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등의 의문이 젊고 미숙했던 저의 머리를 어지럽혔습니다.

하지만 이내 저는 기준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누구도 정해줄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막연함.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는 두려움, 즉 ‘불안’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반대로 명확한 이유를 인식하여 발생하는 두려움은 ‘공포’라고 합니다.)

모두가 ‘갓생러(-er)’일 순 없다

그러고 보니 이러한 분들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약 3년 전의 가상 화폐와 주식, 그리고 부동산의 폭등이 있을 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기억나시죠? 멀리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부자가 된 소식을 듣고 나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건 아닌가 불안해하던, 자산의 변화 없이 불안감만으로 ‘벼락거지’가 되었던 그때를 말이죠.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는 말도 회자됐어요.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인간의 본능일 수도 있어요. 인간은 고도의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집단 안에 소속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동물이지만, 최소한의 개인적인 행복의 기준 또한 존재하기에 타인의 삶을 그대로 살아도 행복할 수 없는 그런 불편한 동물이거든요. 직업을 가지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백수의 삶도 행복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늘 일 생각만 하면서 24시간 회사 일에만 신경 써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서로 양립될 수 없는 두 가지의 기준, 그 애매함. 우리의 심리가 복잡하게 발달하고, 때로는 자신조차 자신이 잘 사는지 알 수 없어서 타인에게 물어보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이죠. 정답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흉내 내는 것은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중도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어느 정도는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 안전할 수 있지요.

그 어떤 삶도 최고의 순간만으로 이루어져 있진 않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우리의 생각은 불안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불안이 우리에게 특정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 말이죠. 많은 경우 우리는 남들과 비교해서 불안해진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우리는 불안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남들과 견주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언제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불합리한 일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고, 우리의 뇌는 공백을 싫어하기 때문에 편견, 오류들로 그 공백을 채워 넣기 마련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남들과의 비교가 불안의 원인인지 아니면 불안의 결과인지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불안의 결과로 남들과 비교하게 되는 것이라면 이러한 비교는 합리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죠.

SOLUTION 1 불안은 때로 ‘사고의 오류’임을 잊지 말 것

객관적인 비교에 의한 불안과 불안에 의한 비교를 어떻게 구분하냐고요? 간단합니다. 비교의 항목이 한 가지인지 두 가지 이상인지만 살펴보면 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고급 외제차와 저렴한 국산차를 비교한다고 해보죠. 만일 우리가 합리적인 선택을 내린다면 우리는 ‘가격’과 ‘성능’ 및 ‘브랜드 가치’라는 최소 세 가지 이상의 기준으로 비교를 할 것입니다. 만일 고급 외제차가 두 배 비싸다면 우리는 그 차의 성능과 브랜드에 의한 만족감 또한 두 배인지를 입체적으로 비교할 것입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서요.

하지만 만일 우리가 다른 곳에서 불안을 느끼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비교를 한다면 우리는 단지 브랜드 가치 단 하나만으로 비교할 것입니다. 마치 타인이 가진 고급 외제차와 내가 가진 저렴한 국산차를 비교하듯이 말이죠, 사실 그 타인이 차 외에 가지고 있는 게 별로 없는 카푸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이것은 공백을 싫어하는 우리의 뇌가 단 한 가지 정보만을 가지고 얼른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이죠. 왜냐하면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확한 정보나 방향이 아니라 불안의 빠른 해소이거든요. 이러한 사고의 오류를 ‘이상화’와 ‘평가절하’라고 합니다.

 

SOLUTION 2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괜찮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불안하고 불행해질 때마다 남들의 삶을 이상화하고 자신의 삶을 평가절하하여 한 번 더 불행해하는 습관이 있죠. 오늘 일이 힘들 때마다 나의 처지를 최악으로 평가절하하고, 벼락부자가 되어 일을 그만두고 은퇴했다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삶을 이상화하여 생각하는 것처럼요. 이유가 없는 설명되지 않는 불행보다는 명확히 설명되는 불행이 더 낫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이러한 이상화와 평가절하는 넘어진 우리의 등을 누군가가 밟고 넘어가는 것처럼 우리를 두 번 힘들고 슬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모든 행운이 나를 비켜 나가는 것 같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은 너무 보잘것없고 또한 비정상 같고 TV나 SNS에 사는 화려한 삶들이 정상같이 보이나요? 어쩌면 그것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생한 당신의 불안과 불행을 설명하기 위한 재료 같은 것일지도 모르죠. 이러한 특징은 인간의 공통적인 면이기 때문에 당신이 부러워하는 그 누군가도 아마 타인의 삶을 보며 불안해하며 자신의 불안을 설명해 가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만만치 않고 공짜가 없는 세상이 그 사람에게만 관대할 리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비교가 혹시 불안을 설명하기 위한 ‘이상화’와 ‘평가절하’인지 꼭 생각해 보세요. 그렇지 않아도 만만치 않았던 오늘 하루 두 번 상처받을 필요는 없잖아요?

권순재 정신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일하며, 정신의학신문, EBS <권순재의 마음상담소> 등에 기고 및 연재를 통해 세상사에 지친 이들의 마음챙김을 돕는다.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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