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우기’보다 어려운 ‘비우기’
“아 맞다. 제가 불안감 때문에 다니고 있었죠?”
다행히 치료가 잘 진행되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문제를 잊고 지낼 만큼 편안함을 유지하고 계신 한 환자분의 말입니다. 요즘 들어서는 진료실에서 하실 말씀이 별로 없다며 겸연쩍어하시던 이분께서도 첫 방문 시에는 정말 열정적으로 자신의 불안과 불행이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특히 거슬리는지, 자신의 고민이 얼마만큼이나 견디기 어려운지 이야기하셨었지요. 얼마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여러 번 하셨는지 듣는 저조차도 그 설명의 디테일과 정교함에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마치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듣는 듯한 느낌일 정도였으니까요.
당신이 행복한(행복하지 않은) 이유
이처럼 불행한 사람에게 왜 불행하냐고 물어보면 정말 여러 가지 장르의 한 편의 장대한 대서사시가 나옵니다. 반면 행복한 사람에게 왜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두 가지 유형 중 하나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네?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혹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 부는 바람이 기분이 좋군요.”
생각이 없거나, 혹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거나. 행복한 사람들의 두 가지 대표적인 특징이지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에서 담고 있는 행복과 불행의 의미처럼, 불행한 사람은 정말 다양한 형태로 정교하게 불행한 반면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대체로 엇비슷하게 행복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싶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마음 비우기’, 정말 일상생활에서 관용구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지요. 얼핏 보면 마음을 비우면 정말 마음이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의 호수처럼 잔잔해질 것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나 알고 계신가요? 마음은 결코 비울 수 없다는 걸요.

쉼의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우리의 뇌에 모든 자극을 비우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있는 순간. 예컨대 잠자기 직전 같은 순간들 말이지요. 우리의 뇌는 조용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시끄러워지기 시작합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의 정신은 지금 우리를 위해 필수적인 과정. 즉 ‘위기 계산하기’, 혹은 ‘위기 예측하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뇌는 외부 자극이 없어지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가능한 한 모든 위협’을 계산하려 합니다.
‘낮에 나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우리 팀 이번 프로젝트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평소보다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요즘 혈압이 높아지는 건 아닐까.’ 우리가 외부에 집중할 것이 없으면 돌입하게 되는 ‘나’의 상태에 대한 점검시간이지요. 조용해지는 순간 역설적으로 우리의 정신은 매 순간 나에 대해 생각하는 ‘바쁜 시나리오라이터’가 됩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일을 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괜히 생각이 많아지고, 대체 어쩌란 말이냐구요? 여기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가장 널리 알려진 명상 방법인 마음챙김(Mindfulness)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SOLUTION 있는 그대로 느끼기, 마음챙김
마음챙김이란 ‘의도를 가지지 않은 매 순간순간의 알아차림’을 의미합니다. 의도를 가지고 현재 이 순간을 판단하지 않고, 내 마음에 떠오르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나 감각이 떠오르면 이 감각의 의미, 즉 위험한지, 안전한지, 행복한지, 불행한지 생각하지 말고 굳이 마음을 비우려 애쓰지 말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도 말고 그냥 ‘아 이런 감각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생각해 보니 늘 그랬습니다. 여름의 찬란한 햇살과 파래진 이파리들이 우석거리는 소리들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항상 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죠. 이렇게 좋은 날에 사무실에만 갇혀 지내는 나를 생각하지요. 밖에서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활기참이 나에게 없다는 점에 대해서 슬퍼하지요. 이제 마음을 비우려니 이번에는 내가 이렇게 한가하게 이 시간에 머리를 비운 채로 있어도 괜찮은지 걱정하기 시작하지요. 비어있는 순간에도 가득 차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나’로 말이지요.
바쁜 일상에서 생각을 갑자기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번 여름휴가만큼은 여러분이 이 곳에서 멀리 떨어진 관광지에 있든, 혹은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는 집에서 침대에 누워 있든 간에 속는 셈 치고 딱 한 번만 마음챙김을 시행해보세요. 제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HOW TO
지금 잠깐이라도 창문을 열고 눈과 귀와 피부에 감각을 집중하세요. 그리고 퍼붓는 비에 양동이에 물이 계속해서 넘쳐흐르면서도 채워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모든 감각기관을 감각으로 채워보세요.
눈으로는 한여름의 작렬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들뜬 거리의 풍경을, 귀로는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피부로는 더우면서도 어딘가 따뜻하게 나를 데워주는 햇살과 동시에 더운 땀을 식혀주어 나를 차갑게 만들어주는 바람을 느껴보세요.
마음을 비우려고 억지로 노력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감각으로 나의 모든 감각기관을 가득 채워주세요.
맞아요. 불안은 ‘과거와 미래, 모든 시공간에서’ 끊임없이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쉼이란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내가 되는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억지로 비우는 게 아니라 반대로 채우는 겁니다. 여러분도 말씀하실 수 있을 거예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부는 바람이 기분이 좋군요.”
권순재 정신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일하며, 정신의학신문, EBS <권순재의 마음상담소> 등에 기고 및 연재를 통해 세상사에 지친 이들의 마음챙김을 돕는다.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를 썼다.

이전 글
[줌 인 글라스] 홈씨씨 인테리어 광고 ‘MTN 방송광고 페스티벌’ 최우수상 수상
다음 글
[줌 인 글라스] ‘홈뮤즈드’와 선배 실내건축 디자이너가 함께한 ‘홈뮤즈 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