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쪽 상담소] 동료와의 협업이 어려울 때(feat. 내 맘 같지 않은 동료)

협력해야 살아남는다

‘사회생활’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사회적 생활을 하려고 하는 인간의 근본 성질.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대인관계의 원만성에 의해 결정됨.’ 이라고 정의됩니다. 영국의 데즈먼드 모리스는 그의 문제작 『털 없는 원숭이』를 통해 수많은 원숭이와 유인원 중에서 우리 조상만이 숲속에서 과일이나 열매를 따 먹던 원숭이에서 사냥하는 원숭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사냥에 익숙해진 많은 육식동물에 비해 갑자기 사냥터에 서게 된 원숭이의 신체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고, 그렇기에 인간은 서로 협력하여 공동체를 형성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회적인 장치와 상호적 상호작용체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점차 진화 과정에서 얼굴과 몸의 털이 점차 없어졌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그의 이론을 100%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인간은 그 어떠한 동물보다도 상호 간에 세밀한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은 반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인간은 얼굴과 언어로 발하는 수많은 신호로 인하여 정말 여러 가지 개성과 성향을 가진 여러 명의 인간은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한데 모여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힘을 합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 천만년이 지난 인간의 새로운 사냥터, 즉 회사에서 우리는 수많은 다른 동료들과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단지 얼굴에 털이 없어지고, 표정과 언어가 발달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개체가 복잡하게 진화한 만큼 각자의 생각은 더더욱 다양해졌죠. 그리고 서로 간의 다른 점은 우리의 사회생활을 더 힘들고 복잡하게 만듭니다.

‘보살’의 마음으로 품기엔…

늘 부정적인 말을 하는 투덜이 같은 동료가 있습니다. 여럿이서 함께 달성해야 하는 업무를 등한시하고, 개인 업무만을 우선시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규칙을 무시하거나 또는 규칙을 어기기 일쑤인 꼼꼼하지 않은 동료들과도 협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과 같은 직급인 나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강제하지도, 팀원을 재배치할 권한마저도 없죠. 그러다 보니 우리는 협업에 있어서 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솔직하게 할 말을 다 할지, 아니면 웬만한 것은 참고 넘길지에 대한 것들이죠.

솔직하게 할 말을 다 하자니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가 망가질 것 같고, 분명 내가 옳은 말을 했는데도 조직 내에서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몰려 고립되어 버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일이 진행되지 않거나 최악의 경우는 여럿이서 해야 할 일을 내가 다 떠맡게 되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한두 번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러한 일이 여러 번 반복된다면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그저 많지 않겠지요. 이러한 경우 현명하기 위한 두 가지 솔루션을 준비해 봤습니다.

SOLUTION 1  상대방의 행위에 대해서 만을 말하고, 본질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갈 것

우리는 자신의 행동의 원인과 타인의 행동의 원인을 설명할 때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합니다. 보통은 나의 행동은 상황적 원인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고 타인의 행동은 성격 등의 내적 원인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죠. 그래서 우리는 사회생활을 할 때 억울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행동은 어쩔 수 없이 외부의 압력을 받아서 한 것이지만 타인의 행동은 그 자신의 성격이나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타인에게 말할 때 우리는 종종 그 사람의 행위와 그 사람의 본질을 헷갈립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반대해도 된다고 말하면 될 것을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성격을 비난하기가 쉽습니다.

“네가 A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나는 불만이 있다”와 “네가 A의 특성을 보이는 데에 있어서 나는 불만이 있다”는 사실 전혀 다른 말이 되어버립니다.

상대방의 품성이나 태도, 인격 등의 사적인 부분을 언급하는 순간 의사소통의 본래 목적은 실패해버리고 자신의 인격이 평가되어버렸다는 상대방의 분노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심한 경우는 상대방을 모욕한 점에 대하여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기 쉽죠.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비판받으면 행위에 대해 돌아보게 되지만, 자신과 불가분의 것, 즉 인격이나 가족, 출신 등을 비난받으면 즉각적으로 분노하게 되어있습니다. (인종이나 특정 출신지역에 대한 비판이 건전한 비판보다는 저질스러운 행위로 인식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불편한 의사소통일수록 내가 상대방의 성격, 품성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는 않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의사소통하는 목적은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면서도 동시에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지 일회성으로 목적을 달성하고 관계를 부숴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SOLUTION 2  불편한 말일수록 바로바로 표현할 것

우리는 자신의 행동의 원인과 타인의 행동의 원인을 설명할 때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합니다. 보통은 나의 행동은 상황적 원인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고 타인의 행동은 성격 등의 내적 원인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죠. 그래서 우리는 사회생활을 할 때 억울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행동은 어쩔 수 없이 외부의 압력을 받아서 한 것이지만 타인의 행동은 그 자신의 성격이나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타인에게 말할 때 우리는 종종 그 사람의 행위와 그 사람의 본질을 헷갈립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반대해도 된다고 말하면 될 것을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성격을 비난하기가 쉽습니다.

“네가 A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나는 불만이 있다”와 “네가 A의 특성을 보이는 데에 있어서 나는 불만이 있다”는 사실 전혀 다른 말이 되어버립니다.

상대방의 품성이나 태도, 인격 등의 사적인 부분을 언급하는 순간 의사소통의 본래 목적은 실패해버리고 자신의 인격이 평가되어버렸다는 상대방의 분노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심한 경우는 상대방을 모욕한 점에 대하여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기 쉽죠.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비판받으면 행위에 대해 돌아보게 되지만, 자신과 불가분의 것, 즉 인격이나 가족, 출신 등을 비난받으면 즉각적으로 분노하게 되어있습니다. (인종이나 특정 출신지역에 대한 비판이 건전한 비판보다는 저질스러운 행위로 인식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불편한 의사소통일수록 내가 상대방의 성격, 품성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는 않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의사소통하는 목적은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면서도 동시에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지 일회성으로 목적을 달성하고 관계를 부숴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SOLUTION 2  불편한 말일수록 바로바로 표현할 것

우리의 어린 시절 동안 우리는 불편한 말을 바로바로 말하는 것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문화권에서 자랐습니다. 매사에 따지는 사람이라든지 불만 많은 사람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뿌리 깊게 박혀 있죠. 그러나 불만과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표현되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정신의학계의 정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족에게 표현하든 동료에게 표현하든 아니면 혼자 일기장에 쓰든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만 그 불만의 감정은 없어지지요.

문제는 분노는 표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엉뚱한 방향으로 증폭된다는 점입니다. 표현되지 않은 불만과 분노는 향후에 집요하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발견해 내 자신의 힘을 모으고 증폭시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전부터 참았는데 말이야!” 하며 히스테리컬하게 폭발하는 경우가 많죠.

대개 그 폭발은 정말 엉뚱한 타이밍에 엉뚱한 곳에서 발생합니다. 그 일이 있자마자 바로바로 말했으면 정당하고 적절할 수 있었던 표현이 오래 묵히는 동안 나의 억하심정과 혼합하여 다른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변화하는 것이죠.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지 못한 분노의 표현은 그 표현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나를 ‘이상한 사람’,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 등으로 만들어 고립시킵니다. 불만을 가장 냉정하고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있도록 표현할 수 있는 타이밍은 그 불만을 느낀 그 즉시입니다. 모아두고 발효시켰다가 엉뚱한 감정으로 변화되기 이전에 짧고 간결하게 불만 사항을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가장 왜곡이 적은 형태, 가장 억하심정이 적은 형태로 말이지요.

권순재 정신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일하며, 정신의학신문, EBS <권순재의 마음상담소> 등에 기고 및 연재를 통해 세상사에 지친 이들의 마음챙김을 돕는다.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를 썼다.

댓글 1개

  1. hyu*** 2026.02.12

    같은 목적을 가지는건 불가능하겠지만 그 목적이라도 같이 공감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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