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결] 흙의 미래

건축에는 무엇이 사용되었나? 얼음으로도 집을 지었고, 황금으로 건축을 치장하기도 했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르고, 용도와 규모에 따라서도 다르다. 사용되는 부위에 따라서도 다르고, 건축에 들이는 비용과 사용 방식에 따라서도 다르다. 종류가 굉장히 많고 다양해서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많고 많은 건축재료 중 가장 오래되고, 많이 사용된 것은 당연 흙이다. 지역, 시대, 용도, 규모, 인종 등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인간이 거처(shelter)로 사용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원시인의 단순한 거처도 흙을 이용했고, 한반도의 우리 선조들이 지었던 움집도 흙을 파낸 공간이었다. 그토록 오래전부터 사용된 흙은 무려 20세기 중엽까지 건축재료로서의 힘을 이어왔다. 기와집이든 초가집이든 주재료는 흙이었다. 흙 바른 구들바닥에 누웠고 흙벽에 기댔으며, 흙이 얹힌 지붕 아래서 살았다. 물성이 달라진 벽돌과 기와도 있었지만, 그것들도 어차피 흙으로부터 나온 것들이었다. 얻기 쉽고, 만지기 쉽고, 효용가치까지 높은 흙은 인류 탄생부터 최근까지 건축의 몸채이자 마무리였다.

튀르키예, 하란(Harran) 지역에 있는 전통적인 원추형 진흙 벽돌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흙은 외면당해 왔다. 고건축 연구대상에 토속 건축인 ‘흙건축’은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간혹 연구대상이 되었을 때도 평면에 대한 분류 정도였지 흙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드물었다. 뿐만 아니라 흙으로 된 건축은 적절한 이름마저 가지지 못했다. 정확한 명칭을 규정하지 않아서 지방적, 자연발생적, 토착적 등으로 애매하게 불릴 뿐이었다. 수천 년간 이 땅에 세워졌던 삶의 흔적이었지만, 정작 흙건축은 정규 건축 대열엔 끼지 못했다.

현대에 들어 흙건축의 대명사가 된 이는 이집트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1900~1989)였다. 이집트는 수천 년 전 인류 최고의 건축술을 가진 나라였지만, 하싼 화티가 활동했던 20세기 중엽에는 달랐다. 빈곤 후진국으로 움막이나 토굴을 파고 살거나 집 없이 떠도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이 참담한 현실로 뛰어들어, 국립카이로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구르나(Gourna)라는 작은 마을에서 기적을 만들어낸다.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는 서양식 건축이 판을 쳤고,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서양식 건축의 주재료는 시멘트였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싼 건축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서양식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숙련공도 모자랐다. 콘크리트 건물은 단열성이 낮아 이집트의 기후조건에도 맞지 않았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서 하싼 화티는 선조들이 사용했던 진흙으로 구르나 마을을 건설함으로써, 세계와 이집트인들에게 ‘가난한 이들이 가질 수 있는 건축’을 증명해 보였다.

이렇듯 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활용은 전통을 현재화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는 일이다. ‘오래된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며, ‘지속가능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환경과 생태의 문제가 심각한 지금이라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제 과거같이 흙을 건축 주재료로 사용하기는 힘들다. 소규모 건축에서는 일부 시도해 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현대 건축에서 흙 사용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말한다. 원점에서 생각해 보자고. 흙은 인간 생체에 가장 적합한 재료다. 물의 영향으로부터 확실히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다른 재료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뭐니 뭐니 해도 흙의 가장 큰 이점은 재활용이다. 자연 상태인 심토로 지은 건축물은 해체한 뒤에도 자연 상태의 흙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러므로 사용한 뒤에 필요하다면 계속 재사용할 수 있고, 필요가 없으면 자연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다. 이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흙에 대한 새로운 인식, 새로운 가치, 새로운 사용처에 시선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모인 시선으로 연구와 개발을 거듭한다면, 과거같이 미래 인류에도 꼭 필요한 재료로서 변신할 수 있지는 않을까. 

허정도 건축가

마산(현 창원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건축의 공공성에 관심을 두면서 도시환경을 위한 시민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언론사와 공공기관, 경상남도 총괄 건축가로 일했다. 지은 책으로 『전통도시의 식민지적 근대화』 『도시의 얼굴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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