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화하고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시대, 지금 우리에게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힘이야 말로 궁극적으로 개인의 경쟁력을 키우고 완생에 닿게 하는 저력으로 발휘되기 때문이다. 15세에 세계적 권위의 비에니아프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최초의 한국인으로,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수상자로 주목받은 이래 옥스포드 대학, 영국 왕립음악원,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국제 솔로연주자 과정을 거치며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한수진. 슬럼프와 부상 등의 리스크도 당당히 넘어서 자신만의 영감을 담은 연주로 감동을 선사하고,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더 큰 목표를 향한 멈추지 않는 힘으로 그녀만의 대장정의 서사를 쓰고 있다.
Q. 8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래로 30여년을 바이올린과 함께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기억하시나요?
바이올린은 피아노와는 달리 처음부터 소리를 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자세를 잘 잡아야 하고 활 잡는 법을 잘 익혀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인내심이 필요해요. 처음 바이올린을 켰을 때 생각보다 예쁘지 않은 소리가 나지 않아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바이올린을 처음 접했을 때는 큰 기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첫 연주를 할 때는 굉장히 설레고 기대도 컸어요. 청중과의 만남,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 다른 연주자의 호흡, 이 모든 것들이 더해져서 음악으로 전하는 메시지도 달라지는 것을 매번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연주할 때마다 기대감이 커지죠. 기대감과 설렘 덕분에 연주가 항상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Q. 지금 런던에서 음반 작업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음반작업을 하려고 왔지만 스케줄이 불규칙하게 진행되는 게 많아요. 그래서 음반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에요. 얼마 전에는 소프라노 김영미 선생님이 런던에 오셔서 예정에 없었던 공연을 한적도 있어요. 다양한 공연을 진행하면서 영감을 얻게 되기도 하고 즐거워하시는 관객을 보며 축복 같은 시간이라고 느낍니다. 일상에서도 예술적인 영감을 충족할 수 있는 활동을 즐기는 편인데 산책도 자주 하고 다른 장르의 공연도 챙겨보고 있어요. 이런 활동들이 저에게 주어질 때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Q. 한수진 님께서는 15세에 한국인 최초로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후 지금까지 음악활동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오랫동안 바이올리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지요?
연주자로 살아오면서 슬럼프도 있었고 어려운 시기도 많았는데요. 그때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많은 힘을 얻어요. 그리고 음악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음악으로부터 받은 힘과 위로가 굉장히 큽니다. 제 삶에서 힘들고 먹구름 낀 시기가 있었을 때 음악이 굉장히 큰 힘을 줬어요. 그래서 음악가로서 사는 덕분에 그런 특혜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합쳐져 결국 제가 음악가로서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죠.
Q. 20대 때 턱관절 부상으로 오랫동안 바이올린을 켜지 못하셨어요.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악기와 함께할 수 없었던 시간은 무척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그 시간을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나요?
부상을 당했을 때 사실 슬럼프를 겪고 있어서 충전할 시간이 생겼다는 기쁨이 더 컸어요.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듯 이 참에 다시 일어서는 힘을 기르자는 마음으로 치료에 집중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연습을 못하고 바이올린과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다른 일도 해보고 부모님과 함께 시간도 보내면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시야가 많이 넓어졌어요. 더불어 힘든 수술을 하면서 제가 누리고 있던 정말 사소한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몸을 의지대로 움직였던 것조차 아주 소중한 것이었음을 깨달은 거죠. 그러다 보니 음악에 대한 애정과 감사한 마음, 그리고 집중력도 훨씬 깊어졌고 음악가의 길이 저의 길이라는 것도 확고해졌습니다.
Q. 긴 재활 이후 마침내 무대에 복귀했을 때 연주와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나요?
다시 연주를 시작했을 때 엄청 설렜어요. 더군다나 저의 복귀가 중국무대 데뷔로 이루어져서 더 감사한 마음이 커졌어요. 이후 독일 공연 등으로 이어졌는데 그 모든 시간이 무척 행복했어요. 돌이켜보면 기쁨을 누리기 위해 재활의 시간이 찾아왔었나 싶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 무렵 주변에서 오랫동안 저를 지켜보신 분들이 한결같이 제 연주가 한 차원 깊어졌다는 평가를 하셨습니다. 힘든 시간을 무기력하게 보내지 않고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하면서 하루하루에 집중하고 성실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음악자로서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던 것 같아요. 또한 음악을 더 깊이 사랑하고 연주할 수 있다는 것에 무한히 기뻐할 줄 아는 태도를 가지게 했고요.
Q.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었어요. 당장 해결되지 않는 것들에 계속 초점을 맞추고 염려하게 되면 다른 것들을 볼 기회를 놓치고 감사한 것들도 잃게 됩니다. 한 발 물러서서 거시적인 안목으로 전체를 바라보도록 노력하다 보면 답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 오기까지 쌓아온 것들이 있을 테니 그 저력을 믿고 희망적인 태도와 생각을 이어간다면 실마리가 풀리고 새로운 기회가 올 거예요. KCC구성원들 역시 회사생활을 하는데 다양한 경험치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어서 나의 역량을 키워주기도 하더라고요. 시련을 겪는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생활을 이어가다보면 더 강하고 성숙해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Q. 바이올리니스트의 경우 여러 음악가들과 협연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협연을 할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협연은 어떻게 보면 직장인들의 협업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기악을 하는 사람은 늘 피아노 반주가 함께해서 완전한 독주는 없어요. 피아노 반주가 항상 함께하니까요. 실내악이 협연의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중요한 것은 악기 연주자마다 전체 연주에서 역할을 정확히 인지해야 큰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이죠. 자기 악기의 소리를 높여야 할 때와 낮춰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연주에 임해야 합니다. 서포트 할 때는 소리를 낮춰야 메인의 소리를 돋보이게 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조화가 잘 어우러졌을 때 천상의 하모니가 만들어집니다. 이럴 때 비로소 함께하는 음악에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또한 청중과도 소통하면서 연주해야 그 가치가 완성되고 음악의 전달력도 커지죠. 협업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KCC처럼 조직이 크고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곳에서는 각 개인의 역량이 합쳐져서 시너지를 낼 거라고 봅니다.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갈 때는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잘 구분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 악기의 소리를 높여야 할 때와 낮춰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연주에 임해야 합니다. 서포트 할 때는 소리를 낮춰야 메인의 소리를 돋보이게 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조화가 잘 어우러졌을 때 천상의 하모니가 만들어집니다. 이럴 때 비로소 함께하는 음악에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Q.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힘을 갖기 위해 평소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저 같은 경우 엄청나게 노력했다기 보다는 제 삶이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계속할 수 있도록 흘러갔던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고 슬럼프나 부상 등의 어려움이 닥치기도 하지만 저는 감사하게도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어요. 존경하는 선생님과 연주를 하게 되거나 비슷한 경험을 겪은 연주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받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죠. 그렇게 음악 속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감사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또한 저는 힘들 때 연주를 이어가기 위해 ‘2주만 지나면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야’라거나 ‘지금 한 걸음 나아가면 덜 힘들 거야’라는 말로 체면을 걸면서 제가 하는 연주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심었습니다.
Q. 무언가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의 속도대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런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페이스를 조절하십니까?
사실 저는 선천적으로 속도가 느린 사람입니다. 이런 성향이 현재 생활하고 있는 영국과도 잘 맞아요. 한국을 오가면서 속도 조절에 신경 쓰다 보니 이전보다는 제법 속도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제는 속도를 내야 할 때와 늦춰야 할 때를 잘 조율하는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다 한번씩 스케줄이 많이 잡혀서 일정이 빼곡해질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꼭 탈이 나요. 하루 이틀로 연주를 끝낼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연주자로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서 롱텀을 이어가려면 항상 약간의 여백을 남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항상 여백을 두는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Q. 음악가 한수진이라는 사람의 음악 인생 여정에 있어 지금은 어디쯤 와 있다고 느끼시나요? 앞으로의 목표와 도전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관심사가 다양했고 예술의 공통점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직 닿고 싶은 분야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많아서 다른 분야와 소통하며 협업하고 연주하고 싶은 바람도 큽니다. 대학 때 에세이 수업 주제 중 하나가 익스프레셔니즘(expressionism)이었는데 그때부터 종합예술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플라톤의 아이디어를 확장해서 음악, 무대장치를 더해 종합예술을 시도해보기도 했거든요. 요즘도 종합예술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분야의 예술과 협업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기는 한데 실현이 되려면 관심 있는 더 많은 분과 만나보고 싶어요. 음악, 미술, 무용이 함께 했을 때 이상적인 예술플랫폼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예술은 국제교류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에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인재들이 정말 많잖아요. 우리가 먼저 이런 새로운 장르를 폭발적으로 키워서 K-팝을 넘어서는 새로운 도전을 꼭 해보고 싶어요.
더 나아가서는 장애인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배리어 프리에 대한 시스템은 잘 구축되어 있는데 마인드셋은 좀 부족해요. 이러한 활동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마인드셋하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어요. 음악은 국경, 나이, 젠더를 초월해서 참여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것이라 음악으로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Q. 마지막으로 KCC 구성원들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힘을 키우기 위해 기억하면 좋을 한마디를 해준다면?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 혹은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발견한 사람도 있을 거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거예요. KCC는 글로벌 기업인만큼 구성원들도 시야를 넓혀서 다른 사람이 가지지 않은 뭔가를 가졌다는 것을 인지를 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것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자신이 가진 탤런트를 조직에서 발휘하면서 이 사회가 선순환하는 환경을 구축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큰 목표는 협업하면서 완성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컵에 물이 반이 있다면 반을 채우는 방향으로 가야 긍정과 연결됩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로 동료와 조직, 세상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더 밝은 내일을 만나게 될 것이고, 걸어온 흔적을 돌아보며 감사하며 미소 짓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KCC 구성원들에게 전하는 인사말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경력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인.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음악학 수료, 영국 런던 왕립음악대학 석사과정,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국제 솔로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12세 때 영국 런던의 위그모어 홀에서 독주, 15세 때 비에니아프스키 국제콩쿠르 최연소 참가해 한국인 최초 2위에 올랐다. 이후 안드라스 쉬프, 기돈 크레머, 유리 바쉬메트, 프란스 헬머슨 등과 실내악을 연주하였고 런던 심포니, 포즈난 필하모닉, 도쿄 필하모닉, 서울시향, KBS, 국립심포니, 심포니 송, 솔로이스트 챔버 오케스트라, L’ Ensemble Ricercata de Paris와 같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하였고 국내외 주요 공연장인 런던 콘서트 홀, Concertgebouw Amsterdam, Suntory Hall, Operacity 및 Bunkamura Orchard Hall, 도쿄, 오사카 심포니 홀 및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연주했다.

댓글 17개
내가 꾸준히 하는 것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내가 꾸준히 하는 것은 가족에게 오늘도 무사히 다녀올게라는 인삿말이다.
내가 꾸준히 하는것은 꾸준히 하는것이다.
내가 꾸준히 하는 것은 말을 예쁘게 하려는 노력이다.
내가 꾸준히 하는 것은 다이어트다. 그러나 꾸준히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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